세상적 세력과 함께 하는 제자는 아닌가?
마가복음 14:43, 54에 보면,
예수님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된 세상적인 세력들과 함께하는 자들이 나타난다.
하도 오려운 형국을 만나게 되자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여도 세상적인 힘을 의지한다(10, 43).
주님을 팔아먹는다(11, 21, 44).
주님을 버린다(27).
그런가하면 주님하고는 멀찍이 한다(54).
세상이 주는 따스함에 그 세력에 편승하여 신앙을 다 팔아 먹는다(54).
구약의 열 두 지파 가운데는 단 지파가 세상에 신앙을 다 내어주었다(삿 18:27-).
신약의 열 두 제자 가운데는 가룟유다가 그러하였다(45).
가룟유다는 예수를 통하여 얻는 사회적 유익에만 몰두하였다.
영적인 것보다 그것을 우선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사단의 종이 되어 예수님을 팔아버렸다.
베드로도 그렇게도 장담했던 자였다.
그러나 그가 한 때에 권력의 힘만 보고 그 따스함의 불에 잠시 눈 팔다가 스승 되신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 그래야 범사도 잘되고 건강도 누리게 된다.
유럽의 교회 신자들을 보면 진정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1)어떤 이는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기 위해 교회를 찾는 자가 있다.
2)혹자는 혼인서류에 목사나 신부의 사인이 있어야 관청에 혼인신고가 됨으로 결혼식을 위해 교회를 나가는 자가 있다고 한다.
3)다른 이는 죽은 후 장례예식의 종교적 서비스를 받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전부인 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교회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종교적 서비스를 위한 ‘하나의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구원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서 ‘예배’가 존재할 수 없다.
작금의 한국 이민 교회들도 노미날리티가, 즉 익명성 존재를 숨기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날까요?
1)교계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정통성 집단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2)또한 물량주의, 상업주의적인 교회 확장은 제자 양육이 되지 않아 이런 이름뿐인 신자들 즉, 노미날리티들이 생성되고 있다.
3)교회와 믿음을 세상적인 세력을 이용하듯이 하는 나쁜 믿음인 것이다.
이러한 내가 아닌가 진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을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의 신자가 되어야 신앙의 맛을 지닐 수 있다.
영원한 탕자로 살기보다는 회복된 신자로 부활의 신자로 살아가야 할 것 아닌가?
많이 가짐에 그 능력이 있는것이 아니라
주 안에 능력이 있음을 붙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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