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목회수상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ULI 2010. 6. 20. 11:03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3)

 

지금 전 세계는 남아공에서 열리는 2010월드컵축구대회(FIFA)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축구 강국들도 16강이 어렵게만 느끼고 있습니다.

아시아지역에 있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북한이나 주최국 남아공의 경우는 정말 승리를 눈곱아 기다립니다.

한국은 지난 첫 경기인 그리스전과는 2:0으로 이기었지만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어이없이 4:1로 지는 바람에 온갖 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차두리를 그 아버지 차범근 콤플렉스 때문에 빼고 아들처럼 아끼는 오범석을 투입한 결과가 뻔하였다.

그 쪽이 번번이 뚫리었다.

박지성을 사이드로 빼서 공격하게 하였어야 했다.

박주영의 사상 두 번의 자책골에,

아르헨티나의 업사이드가 있었는데.

그러나 나이지리아가 그리스 전에서 출혈이 커서 한국 전에서는 세 명의 주전 선수가 뛸 수가 없어서 한국이 가능성이 클 것이다.”

뭐 이런 것들입니다.

좀 가능성은 있다는 예상을 하면서 관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선수들이 잘 뛰어서 한국이 한번 우승을 하였으면 합니다.

세계적으로 경제 10대 대국 정도가 될 정도로 성장하였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하여 하셨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잘한 부자 관원이 와서 무릎을 꿇고서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그것을 다 지키었느냐?

이렇게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이에 그분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사랑함으로 말씀하시었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이러시었습니다.

그 결과는 뻔하였습니다.

22절을 보세요.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 아닙니까?

세계적인 부호인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처럼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으면 될 터인데.....

그 다음 말씀이 아주 절망스러운 말씀이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었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이러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24절에 보면,

제자들이 다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강조합니다.

“어떻게 어려운지 아느냐?

약대바늘귀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에 제자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아우성 거렸습니다.

다윗은 세계적인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그럼 그는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인가 아닌가?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저희를 보시면서

말씀하시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여기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무슨 말씀입니까?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세상에 안 되어 보이는 일들이 수없이 많은데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강조하시었습니다.

제 고향 땅에

한국전쟁으로 이북의 해주 등지에서 배를 타고서 피난 온 사람들이 큰 마을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본래 살던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가 많은 지역에서 살았는데 그들은 주로 어부들이 되어 부두가 형성되는 부두가 마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동네에 수백가구가 살았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곳 마을에 지금은 합병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네 곳 마을을 중심하여 학생들이 한 600여명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과는 달리 그 피난 온 중심된 마을은 공중 화장실을 써야하기에 당시 경제적인 형편으로는 늘 화장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바닷가에는 늘 그런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어릴 때 기억으로는 그곳에 교회를 세웠었는데 거의 한 가정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본 주민 신자들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중에 역사신학을 전공하여 알고 보니 그들은 예수님을 잘 믿던 해주 사람들이었으니 교회와 연관된 자들이 많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동란의 상처로 그들은 거의가 교회를 등지고 자연숭배신앙으로 전락되어 진 것이었습니다.

장로된 저희 부모님은 목회자와 뜻을 같이하여 그들이 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그 마을 언덕에 두 번의 교회를 건축하는 선교적인 행동을 하였었습니다.

저들의 구원을 내다보면서 그 많은 헌신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때는 참으로 답답하였었습니다.

저들은 늘 겨울, 년 초가 되면 한 달 내내 새해맞이 풍어 굿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봄에 배가 바다에 나가서 풍어를 바랐고신상에 안전을 기원하였습니다.

그 화려한 깃발들을 배에 올리고서는

해왕신에게 기원을 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마을이었습니다.

백 수십 개의 배들이 그렇게 바닷가를 장식하였습니다.

그곳 교회 식구들의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저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저들의 영혼도 구원해 주세요.”

늘 이랬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도시화 현상에 편승하여

대거 인천으로, 서울로, 도시로 나온

한 30여년이 지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교회를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보이지 않은 때에도 구원의 일을 하시고 계시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답답해할 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대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었습니까?

우리들이 생각할 때에

“때때로는 절망스러워

굿으로 사는 저들은

도저히 저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어” 라고 생각하였었는데

그들도 구원을 받고 있더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계시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나갈 때에

또한 일을 이루고자 시도할 때에

성공적인 것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 일루어질 수 있을까 하고

절망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돌리듯이 보이지 않게 일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세미하고 정확하게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다 하십니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첫째로, 제사제도를 통하여 하신 것을 생각하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의 계약을 인간 아담과 하와가 깼습니다.

언약을 깬 인간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에덴동산을 벗어나 거하게 되었습니다.

숨어 거하는 눈치인생이 되었고 심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접근하는 처방은

피를 흘려 그것을 상쇄시키어

그들에게 수치를 가려주고

자유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죽옷’입니다.

창세기 3:21을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 지어 입히시니라.”

여기 가죽 옷은 수치를 가리어 준 것입니다.

죄 값을 대신한 피 흘림을 상징한 것입니다.

피 흘림의 성례식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의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방법은 바로 이런 피 흘림의 제사제도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여기에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그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너희도 우리처럼 이런 제사 드리는 방법을 통하여 회복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이다.

이런 피 흘림의 제사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실 거야.“

설교에 의지한 아벨의 피의 제사는 열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지 않은

큰 아들 가인의 제사는 열납이 안 되었습니다.

혈압만 올랐습니다.

자기주장만이 강한

싸움판의 교회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이후

강력하게 이 피 흘림의 제사제도가 정착된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이후의 회복의 방법

아벨의 제사에서 보듯이

피 흘림의 제물을 드림으로 회복하는 축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희생의 제사를 드림으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속죄가 가능하였습니다.

구속이

화목이

회복이 가능하였습니다.

제사의 제물을 드림으로 죄인들이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화목이 가능하였습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고 그 해당되는 제물을 예비하여 드리면 그것이 가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행된 제물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제물이 되심으로 완성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