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교회공동체 영성

포도원 공동체 교회-요한복음 15장

ULI 2008. 10. 20. 23:14

포도원 공동체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70년대의 일이다.

인천 구월동에 큰댁이 살고 있었다. 포도농장을 하고 계시었다. 청소년 시절에 인천에 살면서 초가을에 생각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구월동이었다. 인사드리러 간 다기 보다는 우선 포도라도 먹을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곳에 가서 보면 항상 바빴다. 일은 조금 도와주고 포도를 한 두어 송이 먹으면 꿀맛이었다. 주렁주렁 맺힌 포도송이가 그렇게도 보기에 좋았다.

한국 포도 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요. 11월 초에 가보면 가지치기에 열심들이었다. 또 겨울을 대비하여 얼어 죽지 않게 하였다. 봄이 오면 거름을 충분히 주면서 다음 포도농사를 내다보면서 일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결실에 대한 교훈을 포도송이를 보면서 “저렇게 많이 탐스럽게 열매가 맺힐까”듬뿍 느끼게 되었었다.

포도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그 가지는?

1)엉겅퀴와 비슷하다.

얽히고설켜있다.

다른 식물들을 못살게 군다.

2)반듯한 것이 없다.

그 심성이 뒤틀린 모습이다.

3)기둥감으로는 생각조차 못한다.

포도나무 집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4)창작품으로도 쓰임 받지 못한다.

내구성이 완벽하여 그것을 이용한 품격 있는 예술품을 만들 수가 없다.

5)그 잎은 있는가 하더니 없어지고 다 떨어진다.

포도나무 잎으로 자랑할 수 없다.

6)오직 돌보아 주어야만 열매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손길이 많이 필요한 과실나무인 것이다. 돌보아 주지 않으면 거의 고사상태에 직면할 뿐이다. 주변을 어지럽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까 포도나무는 오직 그 열매로만 말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늘 예수님은 제자의 표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 농장을 가지고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설명하셨다.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계시한 말씀이었다. 바로 본문은 오늘날 우리 교회가 포도나무 농장 공동체인 것을 계시해 주고 있다.

첫째로, 예수님은 포도나무에 가지가 왜 존재하는가를 말씀해 주시었다(2-3).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열매인 것이다.

포도나무 농장은 예수님과 우리 신자와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특별한 계시가 있다. 이것은 생명적인 관계의 결과를 설명하려는 주님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관에 대하여 잘못된 세상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주시는 계시가 크다.

교회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세상적인 것의 우수함으로 자랑하려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우리 교회 구성요소가 좋아!’ 이런 말을 삼가라는 것이지요.

요즘 MB정부 고위층에 소위 ‘고소영’이 힘들게 나타나자나요. 교회의 지체들이 그리스도안의 지체가 아니면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다 마귀의 밥이 될 뿐이지요.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서는 미래의 교회관을 가르쳐주신 것이지요.

곧 포도나무 가지를 가지고는 책상, 걸상이나 가구를 만들 수 없다. 포도나무 가지를 가지고는 건축물에도 쓸 수도 없다.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포도나무 가지는 우리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하고, 포도원 전체는 교회를 의미함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존재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과실이란 열매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다섯 가지 열매를 말할 수 있다.

1) 본문 2절에서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본문 3절에 보면,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주님께서 깨끗케 하시는 경우가 있고, 본인이 깨끗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회개의 열매를 말한다.

포도나무 가지는 오직 과실을 맺을 때에만 쓸모가 있다. 그 열매를 맺지 못할 때에는 잘라 버려야 한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전지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복잡한 생활 정리도 곧 결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복잡한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그 열매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포기의 영성이 지배되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회개로 나타난다.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라진 그 가지들은 불태워 버릴 수밖에 없다. 그 잘라진 가지가 너무 난잡하고 쓸모없어 보이기에 불에 태워 없애는 것이다. 그 심판의 계시적 의미가 큰 말씀인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존재하는 목적은 영양을 공급받아서 오직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을 유익하고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데 있다.

2) 본문 4절에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고 하셨다.

본문 5절에도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강조 하셨다.

이는 교제의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배이다. 신자의 예배생활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또한 신자들과의 믿음의 교제 구역활동, 전도회 활동, 구제활동, 친교활동, 축하와 위로활동을 말한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활동하는 참여를 교제라고 한다.

여기서 보듯이 교회생활은 좋은 교제권을 형성해야 우리가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이길 수 있게 된다.

요한복음 13:30에 보면, 가룟 유다가 열 두 제자단에서 이탈할 때에 사단이 극성을 부리게 되었다. 어두운 밤의 역사만이 나타났다. 그는 사단의 수하에 들어가 그 종노릇하게 되었다.

3) 본문 7절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다.

이는 기도의 열매를 말씀한 것이다.

이 포도 농장 공동체에서는 풍성한 결실을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농사일인 것이다. 김매고 거름주고 가꾸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기도 농사를 말한 것이다. 영적인 일을 하는데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인가?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초대교회 안에서 최초로 무엇을 결정하였는가?

열두 사도 단을 추스르는 일이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맛디아를 선택하였다. 팀워크를 다진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기도 운동이었다.

전도 운동이었다.

구제 운동이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그들은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 연구하는 것에 전무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될 사도 수준의 큰 열매인 것이다.

4) 나아가, 본문 7절의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말씀은 말씀을 듣는 말씀의 열매를 말한다. 곧 설교의 열매 말씀한 것이다.

우리 신자들이 언제 영성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을 때인 것이다. 그 말씀에 붙들려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그를 주관하는 법이 달라진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은 주마다 운전법이 다르다. 빨간불일 때 우회전이 가능한 지역이 있고 벌금을 무는 주가 있다. 어디에 거하느냐에 따라 확실히 그를 주관하는 법은 다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도원 운영은 일반 농사와 좀 다른 부분이 있다. 그 원리를 인정하고 필히 따라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해에 풍년이 된 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님의 법에 따라 살아가야 천국에서 칭찬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열매이다.

5) 본문에 이어지는 9-10절에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

이는 사랑의 열매를 말씀한 것이다. 이것은 곧 성령의 열매의 핵심을 언급한 것이다.

이양이면 주님의 일을 사랑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 계명대로 살아가면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웃을 대할 때에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 외에도 신자들에게는 전도의 열매, 충성하는 헌신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우리 신자들은 이와 같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구원받은 신자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설교를 잘 듣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

사랑의 헌신을 하는 열매도 있어야 한다.

여기 주님이 언급하신 다섯 가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을 그 때에는 부지런하신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 잘라 버리고, 불살라 버리심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제자로서의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요 15:8-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기독교인들의 삶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포도원 농부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을 정기적으로 잘라낸다. 잔인하리만치 그렇게 한다.

농부는 어떤 가지를 가지치기하는가?

네 종류의 가지는 분명하게 가지치기 한다.

가) 묵은 가지를 잘라낸다.

열매와 상관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에너지만 소비한다.

나) 병든 가지를 잘라낸다.

병균을 옮기기 때문이다.

다) 죽은 가지를 다 잘라 버린다.

주인을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 엉뚱한 데에서 자란 가지를 잘라낸다.

모양새를 버려놓기 때문이다.

잘라내어서 깨끗케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열매도 맺지 못하면서 수확을 감소시키도록 에너지만 소모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포도송이까지도 몽땅 잘라 버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포도원의 다른 포도송이를 버려 놓거나 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병균을 옮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다.

 

요즘 기독교를 개독교라고까지 비평하고 있다.

그 소리가 좋지않은 징조로 보인다.

러시아가 망해갈 때의 기독교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님이 잠시 한국에서 교회세력들을 쓰러버리시면 어떡하나 염려가 된다.

제2의 공산세력이 들고 일어난다면 아마 목사들도 찬성할지 모른다.

기득권 교회세력들이 너무 부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야합, 돈, 권력 나눔, 세속적 멧시지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부패되고 병든 기독교회들을 경성시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