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의 조상 유다 지파 이해하기
창세기 38장 이하에 보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곱의 아들 유다 자손으로 오신 것에 대하여 속 시원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창세기의 유명세로 말하면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 지파 후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지파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유다 지파 자손으로 오시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 창세기에 분명하게 그 근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설교자들과 성경교사들이 요셉에겐 엄청 투자하면서 그 형 유다에게는 그러지 못한 채 그냥 유다 자손 예수라고만 하여 온 것입니다.
오늘은 유다 족장의 영성 형성 배경-.가정적 다섯 가지 고통(창 38장)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영성을 업그레이드 하겠습니다.
유다는 삼단계적으로 나쁜 환경을 신분 상승의 기회로 선용한 영성의 소유자입니다. 오늘은 그 둘째 단계인 유다 자신이 가정적으로 겪었던 다섯 가지 고통이 영성 형성의 배경이 되었음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이런 가정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주님의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정적으로 내면적인 다섯 가지 큰 고통에 직면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형제들로부터 실망하여 그들에게서 떠나야만 했던 고통을 겪었습니다(창 38:1). 형제지간에 살기가 등등하여 그 어린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한 창세기 37:26의 사건을 목격하고 자기 형제들에게서 떠나 내려갔습니다.
둘째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해 버려 고통 속에 들어갔습니다(창 38:2). 이방 방탕 문화에 깊이 빠져든 탕자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그렇게도 싫어하였던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인처럼 산 것입니다. 에서처럼 산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4:6에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는 행위와 같았습니다. 오기로 결정한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은 고통만 담겨질 뿐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자기 생각에 매여 험난하게 살지는 않습니까?
셋째로, 그는 아들 둘이 죽는 고통을 겪었습니다(창 38:7, 10).
이것은 탕자가 의지할 것들을 다 탕진한 것과 같습니다. 유다의 첫째 아들이 잘 커서 ‘다말’과 결혼을 하였습니다(6). 그런데 유다의 장자가 여호와 앞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7). 그래서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에게로 들어가 남편 역할을 하라고 하였는데, 받들지 않고 땅에 설정하여 그것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므로 그도 죽게 되었습니다(10). 이렇게 당시 계대결혼법대로 계속하면, 셋째 아들도 잃을까봐 유다는 친정으로 며느리를 보냈습니다(11). 아들 둘은 죽고 막내는 처가댁에 엄마와 같이 보내야 했습니다.
넷째로, 그 얼마 후에 자기 아내마저 죽게 되었습니다(12).
이것은 탕자가 쥐엄열매로 주려죽게 되는 상황과 같습니다. 창세기 38:12에 보면, 유다는 아내의 죽음 소식을 접하자 자기 자신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내의 죽음은 남자가 겪는 갈등 중에 가장 크다고 합니다.
다섯째로, 그는 딤나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자부 ‘다말’과 부지중에 관계하게 되는 최악의 수치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창 38:16). 이것이야말로 그 의로운 오기를 지녔던 그에게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을 석 달 후에나 알게 되었습니다(24). 그는 그 여자를 없애려 하였으나 그녀의 치밀한 증거물에 꼼짝없이 당했습니다. 그 후 그것도 곱빼기인 쌍태를 가졌다는 고통을 갖게 되었습니다(27). 그 아들인 ‘베레스’와 ‘세라’가 그들이었습니다(29-30). 이렇게 유다는 고통과 수치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의라고는 조금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고통 중에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주님의 은총을 구하고 새롭게 심신을 단장하였습니다.
그 유다가 어머니 부활 영성 이식으로 야곱 공동체의 중심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에 적극적인 구원활동의 전면에 서게 됩니다. 그 고통을 이기고 다시 일어난 유다의 적극적인 사역을 창세기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통을 통하여 큰 교훈을 받았고 삶의 부활을 경험하고 새롭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과연 쓰실만한 혈통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와 기독교의 부활영성의 진수인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영성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5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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