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들러리 세례 요한
요한복음 3:22-30에 보면, ‘행복에 겨운 들러리’가 나온다.
서양식 결혼식에서 신랑이나 신부를 식장으로 인도하고 거들어 주는 사람이다. 결혼식에서 신랑 측 들러리의 기원은 가. 대개 결혼식이 밤에 진행되어서 신부를 납치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 라고 한다. 보통 외국에서 들러리를 입장 때 신랑신부보다 먼저 입장을 시키는데 그 이유는 행복한 결혼식 때 나쁜 기운이 신랑신부에게 전해지지 않게 신랑 신부와 똑같이 드레스/턱시도를 입은 들러리를 입장시켜 헷갈리게 한다는 데 있다고 한다. 나. 서양인들의 조상들은 남자가 결혼을 할 때가 되면 평소 눈여겨 봐뒀던 처녀를 납치해 와서 결혼을 하는 '약탈혼'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신부를 납치할 때는 아무리 힘없는 여자이지만 신랑 혼자서 납치하기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신랑의 친구들이 거들어서 납치를 한 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외딴 곳에 신부를 숨겨두었다. 신부가족이나 신부의 동네사람들이 신부를 찾기를 포기할 때 까지 잘 감시를 해야 했었다. 그때도 물론 신랑의 친구들이 교대로 망을 보는 일로 거들었다.
그리고 신랑 친구들이 신부를 납치하여 숨겨 두는 기간을 고대 노르웨이어로 '아내를 얻다'란 의미라고 한다. 영어화 되면서 'honeymoon'으로 표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단지 발음을 영어식으로 표기를 한 것일 뿐이고 신혼여행의 유래가 된 것이다.
미국의 결혼식에는 드러리를 양측에서 3명 이상씩을 세운다. 이러 인하여 결홍경비를 많이 쓰게 된다. 그 옷과 구두를 제공하여 주기 때문이다. 교회를 빌리는데도 3500불 이상을 제공하여야하고 파티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 들러리들을 보는 행복은 있다.
세례 요한에게서 들러리 삶의 자세를 보게 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질투가 없었다.
요 3:30-"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우리로서는 세례 요한에게 시기, 질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경쟁사회 속에 살아가는 철학을 지녔다면 그는 정말 시기, 질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벗어나 있었다.
[예수 심리학] 이라는 책에 보면, 예수님에게는 승부욕이 없었다고 강조 있다. 예수님은 누구를 이기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시기와 질투에서 벗어난 것이다. 잔재주를 부리지도 않았다. 잔재주는 질투에서 오는 것이다. 승부욕으로부터 자유 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제자도에서, 세례 요한에게서 발견된다.
눅 9:23-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인가?
‘육신적인 자기생각을 부인하라. 자신이 선택한 자기에게 있는 모든 여건을 수용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라. 그리고 네 인간적 생각대로 신앙하지 말고 예수님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라.’
이런 것 아니겠는가? 창조적인 행복의 세 요소는 바로 이것이다.
ㄱ)자기부인이다. ㄴ)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ㄷ)오직 주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오늘 하루 이것을 묵상하면 당신은 제자일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자세를 지닌 세례요한처럼 행복한 들러리임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이 이루었다. 내 몫이다." 라는 말은 내어던져야 행복이 다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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