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자기 정체성 선언
요한복음 6:28-40
요즘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이 큰 문제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1) 교회 안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기독교인의 모습니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이나 고백을 잘 한다.
2) 교회를 나가 사회에서는 어떻게 비춰질까? 불교인 행세를 한다고 한다. 다 형통되고 잘 되기를 기원하고 추구한다.
3) 가정에 가서는 어떤 존재로 비쳐질까? 유교인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남존여비가 강하고 나이차별이 심하고 봉사를 천한 것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기독교교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큰 문제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분명히 인식하시고 계셨다. 그 대표적인 증거로 우리는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예수님의 특별한 어법을 주목해야 한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무려 7회에 걸쳐 "나는 ~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을 나타내고 계신다.
요한복음 6:35-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 8:12-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10:9-나는 문이다.
요 10:11-나는 선한 목자다.
요 11:25-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5:1-나는 참 포도나무요.
이 일곱 가지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자신이 생명이라는 선포이다.
1) '떡'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양식을 상징한다. 먹지 않고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2) '빛'은 생물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태양이 사라지고, 달과 별이 숨어버린 세상은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에게 지옥과 같은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빛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3) '문'은 양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 주는 울타리와 같다. 우리가 위험을 느낄 때 제일 먼저 물을 잠그듯이 문은 생명을 보호하는 기능을 암시한다.
4) ‘선한 목자’는 양들의 생명을 지키는 목자이다. 그들에게 양식을 주어 생명을 번성하게 한다. 그 양들을 지키어 생명을 지키어준다. 선한 목자는 보디가드이다. 아침과 저녁, 그리고 새벽에도 떠나지 않고 양들을 돌보는 목자는 위험한 짐승과 험한 골짜기로부터 양들의 생명을 지키는 특급 경호원이다.
5) ‘부활이요 생명’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주체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는 자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부활과 생명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생명 그 자체이다.
6)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는 예수님께서 생명으로 가는 길이요, 생명을 얻는 진리임을 알려주는 말씀이다. 불의는 사망이요 진리로 살아야 하는데 진리 되신 예수님은 생명이심을 말씀한 것이다.
7) '참 포도나무'는 가지와 열매를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참 포도나무가 공급하는 생명을 이어 받아야 가지와 열매들이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싱그럽게 자랄 수가 있는 법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샤머니즘에서 섬기는 천지신명처럼 정성스런 지성을 드리면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주는 존재 차원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이며 가장 소중한 어떤 것, 즉 생명을 공급하고 자라게 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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