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영성 추수감사절
LA말씀새로운교회 김회창 목사
미국에서의 기독교의 명절은 추수감사절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과실을 얻어 생명을 보존하는 청교도들의 추수 후 감사행사에서 기원한다. 그들은 화려하다 하는 꽃의 영성에 머물지 않고 과실을 맺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들어내는 추수절기를 창출해 낸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생명력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꽃은 화려함의 상징이다.
꽃은 화려하기에 좋아 보이는 것이 많이 있다. 꽃은 뭔가 소망을 갖게 하고, 마음을 밝게 해준다. 꽃만 있으면 그 안에 향기가 가득하게 느껴진다. 그 안의 분위기를 새롭게 해준다. 꽃은 순결한 사랑을 나타낸다. 꽃은 인기와 같아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렇게 꽃피우기를 기대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은 이 꽃에 머무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꽃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교만스럽게 높은 데 거하려고 한다. 가운데 자리, 높은 자리에 매일 때 우리는 꽃의 영성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꽃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꽃의 단계를 거친 열매, 즉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창조가 보여 지는 진리에 거하여야 한다. 이것은 자신이 땅에 떨어져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의 임재는 말구유에 출생, 갈릴리 목수 요셉의 아들로 목수로 성장, 갈릴리 나사렛 촌 동네에서 젊은 나날을, 극한 죄인만이 처형당하는 십자가의 처형이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지녔던 이미지였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끊임없이 내려가고 희생하여 아예 땅에 묻히는 이미지였다. 예수님은 사는 곳에서, 사역의 십자가에서, 가장 깊은 심령의 계곡인 갈보리 계곡에서 자신을 깨뜨리셨다. 거기에 부활의 새 싹이 돋아난 것이었다. 인류 구원의 열매를 맺히셨다. 그것이 그의 선교적 결실이었다. 거기서 영혼의 추수감사가 되지 않겠는가?
추수감사절 바로 여기에서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이 시작되는 그 비밀스러움을 우연이라고 하겠는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가 보여지는 추수감사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이 확 뜨여지길 기도해 본다. 아메리카의 감사절로 우리는 성경의 사건을 회복시킨 민족에게 하나님께서는 크신 축복이 머물게 하심을 보게 되어 감사하게 된다. 성경의 절기를 회복하게 하는 ‘꽃의 영성이 아닌 열매의 영성의 그리스도인’은 지금 성경의 사건을 현실화하고 있는 자이다.
(크리스챤헤럴드 신문 게재함-11월 27일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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