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교회공동체 영성

제자 그룹 공동체 1

ULI 2008. 11. 19. 06:01

제자 그룹 공동체

요 2:23-25

11.16.2008

○얼마 전에 목회자의 자질을 조사한 보고가 있었다. 그 자질이 무엇인가?

영적 능력에 38.9%, 소명의식에 30.9%, 인격에 9.6%, 따뜻한 인간애에 9%, 성경·신학 지식에 6.1%, 성실성에 4.8%, 기타에 0.7% 등으로 대답하였다.

모 교단-기독교대한감리회-성도 339명에게 목회자가 우선적으로 지녀야 할 자질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성도들은 신학과 성경의 지식보다는 목회자의 영성이 훨씬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목회자만 그러해야 하는가? 단지 모본일 뿐이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성육신하신 예수님 당시에 허다한 무리가 따랐었다. 그들을 예수님은 어떻게 대하여 주셨는가?

또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에게는 어떻게 대하셨는가?

예수님은 제자들까지도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본다.

막 3:16-19을 보세요.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

17 또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

18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메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

19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잘 분석하여 목회하셨음을 보게 해 주는 것이다. 당시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크게 네 그룹으로 분류하여 양육하였음을 보게 된다.

 

첫째로, 무리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 대하여 출산 곧 영적 거듭남에 목적을 두었다. 이들은 선교적 목회의 대상일 뿐이었지 동역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 무리는 어떠한 자였는가?

(마 4:23-25, 막 3:7-12, 요 6:1-15)

이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른 동기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표적 때문에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께 항상 병을 고쳐 달라,

먹을 것을 해결해 달라,

귀신을 내어 쫓아 달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의 요구를 어떻게 하셨는가?

외면치 않으시었다.

그들에게 병 고침과

배고픔의 해결,

그리고 귀신 축출을 해 주셨고,

그것과 더불어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존재였는가?

천국의 복음 즉 영적인 세계보다는

먹고 사는 것, 병 고치는 것육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졌고, 이것들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자들이었다.

오늘 본문 요 2:23-25에서는,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치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라고 기록해 주고 있다.

막 3:7-12에 보면, “.....큰 무리가 좇았고 8 .....허다한 무리들이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오는지라”고 하고 있다.

표적을 보고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요 3:5)고 말씀하시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영적 변화를 요구하시었다.

요 6:1-15에 보면,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하는 그 표적을 보고는 그 선지자라 하였다. 이는 단순한 지도자를 의미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그 15절에서 그들의 예수님을 왕 삼으려는 행동에서 발견되어진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었다.

오늘날도 이런 무리와 같은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을 통해 부자 되기를 원하고,

병 고침 받기를 원하다가

그러다가 그것이 해결되면 언제라도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가는 무리들이.....

또한 예수님이 세상 문제의 해결사이고 만병통치인 것으로 착각하고 예수님을 믿다가 세상의 일이 안 풀리면

왜 예수님을 믿는 데도 이렇게 잘 안 되나? 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부류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기복적 신앙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예수님은 또한 이런 자들에게 절대로 당신의 일을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보았던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자신들의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무리는 구원의 주변에서만 머물다가 말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당시 종교인들 집권 세력들에게 이용만 당한 자들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둘째는, 제자들이다

(눅 6:12-13, 요 6:1-66, 행 2:41).

이들은 온전한 헌신 없이 그저 예수님을 좇은 자들이다.

a) 이 제자들과 열두 제자(사도)와는 구별된 그룹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제자들이란 예수님을 좇되 온전한 헌신 없이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이다. 즉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제자가 12제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서

제자는 믿는 자와 동일개념으로,

사도는 12제자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어 제자와 12제자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사도’라는 호칭을 주었음을 강조해 주고 있다(눅 6:12-13).

b) 사도행전 초기에도 제자들이라는 용어를 목숨을 건 믿는 자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사도행전 초반부에서는 세례 받은 자를 ‘제자’라고 호칭하였다. 이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큰 핍박에 처하게 될 수 도 있었다. 그러니 제자라 호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행 2: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행 6:1-2-그 때에 제자들이 더 많아졌는데.... 12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이르되...

행 6:7-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더 많아지고

c)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와 12제자에 대한 마가와 누가(사도행전), 요한의 이러한 구별은 교회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 기독교인들은 유대-로마 전쟁과 이로 인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라는 대단한 박해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불안한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마가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나중까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복이 있도다(막 13:13)라고 격려하며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는 순교를 각오한 신앙인들을 제자라고 부름으로써, 12제자와 동일시하였다.

그러나 좀 지나서 교회가 성장하여

안정되는 시대에 왔을 때는

비록 그들이 모두 믿는다고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도가 마가 교회의 때처럼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는 헌신자들은 아니었다.

여기에 누가와 요한

믿는 자와 12제자를 구분하여 믿는 자를 제자 하였고, 믿는 자들 중 주님을 위해 철저한 헌신을 다짐하는 자를 12 제자 또는 사도 불렀다.

이런 구분을 통해

누가와 요한은 자신의 교회공동체 멤버들에게 대체로 예수님께 충실했던 12 제자를 본 받아야 할 긍정적 모델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고,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면 바울과 야고보의 말은 서로 다른 것인가? 아니다. 같은 말이다.

이 난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로마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발각될 경우 사자굴 속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의 믿음에는 이미 엄청난 행함이 수반되어 있었음을 유추해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때는 믿는다는 것이 곧 순교로 이어졌던 때였다. 죽음을 각오하지 아니하면 믿는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던 때이었다.

그러나 야고보서를 기록할 당시의 교회는 바울시대 보다 훨씬 신앙생활이 자유로웠다.

바울의 시대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거나 하는 위험은 대체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교회 안에는 말로만 믿는 믿음들이 많아졌고, 이를 경계한 야고보서 기자는 이들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울이 말한 믿음의 개념과 야고보가 말한 믿음의 개념이 다르지 않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12 제자를 따로 뽑아 제자들-온전한 헌신이 없이 믿음 생활하는 자와

열두 제자-철저한 헌신을 다짐한 믿음의 행함이 있는 자를 구분한 것이다.

d) 요한복음 6장은 일반적인 제자들의 신앙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무리들을 먹이시자 무리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옹위하려 하였다. 이때 예수님은 먼저는 무리를 피하셨다가 이튿날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왕으로서가 아닌 수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과 12 제자에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하는 수난의 길에 동참하여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소위 성찬의 복음을 전하였다.

곧 자신의 몸을 찢기어 죽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자, 이 말에 실망한 무리는 모두 떠나갔고, 제자들 중 많은 자들이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 어렵다 하며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되, 예수님이 요구하신 헌신, 즉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수난의 길에 동참하는 길은 거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짚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눅 14:26-27-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마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입으로만 주님을 고백하고 어떠한 희생도 하지 않으려는 신앙은 아직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지 못한 자의 신앙이다.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신자가 이런 제자 이름만 가진 자들의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