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교회공동체 영성

겉옷 교인 공동체

ULI 2008. 11. 13. 04:46

겉옷 교인이 있다(요 19:23).

로마 군병들은 죽어 가는 사람에게서 나누어 가질 자신들의 분깃만 생각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는 상관없었다.

누가복음 23:11에 보면, 예수님께 빛난 옷을 입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의 왕의 옷이라는 상징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빛난 옷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유대 사회에서는 겉옷은 무엇이었나?

자신의 계급이나 재산 소유의 상징이었다.

이로보아 이 군병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빼앗아 가질 혜택에만 관심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즉 물질적인 데에만 관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요즘 한국에는 '사'자 신랑 결혼도 성적순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사회에서만 그런가?

오늘날 교회 안에 겉옷 교인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예수님보다는 예수님이 주는 혜택에만 눈이 어두운 자들이 많다.

 

이들은

가. 욕심이라는 귀신에게 정복당한 채 사는 자이다.

나. 십자가를 지고 가기 보다는 편리주의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지고잉(easygoing)을 추구한다.

다. 만들어 가기 보다는 딴 사람들의 헌신을 이용하려는 얄팍한 ‘상술 교인들’이다.

라. 이렇게 살다 보니까 사람보다는 사람의 조건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재력과 학력과 권력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척도가 된 것이다.

이런 자들을 일컬어서 ‘껍데기 교인들’이라고 한다. 곧 ‘겉옷 교인들’이다.

바울 사도는 “나는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바라보노라. 나의 푯대는 그리스도 예수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노라”고 하였다.

이같이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히 12:1-2).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위에 있는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십자가에 우리의 눈이 집중되어야 한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하여야 한다. 우리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껍데기 교인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은

예수님 이름을 팔아 대교회 이루었다고,

병 고치었다고,

그로 인하여 호위호식 하던 자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그들에게 "물러가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으라"고 하였다.

그들이 또 무슨 말씀을 들었을까?

“너희들은 겉옷만 취하느라고 정신없었노라.

그러다 보니 교회를 마구잡이로 찢어놓았다.

져주는 경우가 없었다.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었노라.

나폴레옹의 영향인듯 싶구나.”-“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이런 성공신화에 붙들려 산 것이지 나에게 붙들려 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사도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가 아니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그냥 이기고 봐야 한다는 세속철학으로 산 것이다.

급기야는

예수님은 “화려하고 좋은 옷을 입은 자를 찾느냐? 헤롯 궁궐에 가 보아라”고 하였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화려함만을 추구하다가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신앙생활이 될 것임을 계시하신 말씀인 것이다. 화려한 겉옷 거기에는 주님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