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지도력

모세의 기도 지도력-고통해결법

ULI 2009. 11. 23. 00:03

 

모세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기도로 풀어갔다(출 15:25).

모세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무엇을 하였나요?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가 고통가운데 누구를 보아야 하는가?

1)그 사람에게 찾아가 보아도

고통은 풀어지지 않고, 또 하나의 가시넝쿨을 머리에 뒤집어씌우고 돌아올 경우가 허다하다.

2)인생의 마라를 경험하게 될 때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본문에 다급해진 모세가

성난 군중들에게 눈을 두고,

이렇게 대처해 보고, 저렇게 대처해 본 것이 아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분을 향하고 부르짖었다.

이러한 믿음의 기도가 구원의 길을 체험케 되었다. 하나님은 그 모세에게 해결의 길을 주시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부르짖는 사람에게 주신다.

"모세야! 물이 너무 쓰지?

저 나무 보이지?

그 나무를 물에 한번 던져봐.

그러면 그 물을 모두가 마실 수 있을 것이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응답은 엄청나게 단순하다.

인간의 생각처럼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다.

굉장한 절차가 따르지도 않는다.

복잡한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도 사용하지 않는다.

엄청난 경제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모세는 나무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양을 치면서

이것은 먹어야 될 나무,

저것은 먹지 못할 나무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40년간 전문성을 지닌 양치기였고, 들판을 분석한 사람이었는데, 왜 몰랐었겠는가?

모세에게는

"하나님! 이 나무는 토사광란이 났을 때나 즙을 내서 먹는 나무가 아닙니까?

이것을 쓴물에 집어넣는다고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

이렇게 반문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끌어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25절 말씀에 보면,

그런 행동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지 모세는 지시한 대로 단행했다는 것이다.

바로 보이는 것에 답이 있음을 보여주신다.

바로 곁에....

혹 내 손에 있는 지팡이가,

혹 내 손에 있는 물맷돌 다섯 개가,

혹 내 오른 편에,

혹 내 심령 안

혹 내게 들리는 소리가 답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기도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잡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때도 있다.

어떤 경우인가?

불안함이 지배할 때이다.

이 때는

“이미 죽었습니다.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뭐 이런 소리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의지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기도했습니다,

내가 시간을 냈습니다."라는 식에 빠진다.

결국에 자기 의를 더 굳게 해버리는 이상한 콤플렉스에 걸려들 때도 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마라’라는 쓴 물 곁에

해독하는 나무가 함께 있었음을 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쓴 물은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지만, 이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무슨 은혜란 말인가?

하나님께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고통을 아뢰고 맡기는 것이다.

구원의 길, 은혜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고통이나 헌신이라고 하는

부담스러운 신앙적 고통이 내게 느껴질 때에

기도는 정답이다.

그리하면 바로 그 곁에 하나님은

그 쓴물을 해독할 수 있는 나무,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를 예비주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가슴에 묻고 있는 고통과 슬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폼으로만 믿지 말고 십자가를 감당해 주신 주님 앞에 다 내어놓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는 이것이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 나는 그 상처가 너무 큽니다."

이렇게 털어놓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준비해 두신 응답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