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는
북괴가 보면, 눈 앞에 가시나 마찬가지로 여길 것이다.
해주로 오고가는 군사적이고, 국제적인 비지니스가 다 파악되니 말이다.
더구나 지금은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면서 그 어떠한 액티브도 다 감지되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에 살던 땅이기에 금번 폭격당한 소식은 의분을 자아낸다.
더구나 민간인 지역에 포화를 퍼부은 것은 아주 악랄한 짓이었음을 밝힌다.
아마 병기창을 겨냥한 짓으로보여 지기도 한데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마을에다가 그렇게 불을 뿌렸으니 하나님의 진노가 북을 찌를 것으로 보인다.
금번 지난 화요일 연평도에 북한의 도발행위는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거인 것이다. 세계인 앞에 정죄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짓거리이었다.
아시안게임 휘날레를 멋지게 장식하려는 중국에게는 물론이거니와
G20 정상들 회의가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그것을 비웃듯 그들은 만행을 저질렀다.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였던 연평도를,
어부들의 희망이기도한 연평도를
십여년 전부터 그러더니
지금은 전쟁의 소용돌이로 만드는 북괴군의 금번 작당은 세계인들의 뇌리 속에 그야말로 폭도인 것임에 틀림없게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급해진 것이 사실임이 입증된 사건인 것이다.
그렇게 가슴에 품었던 행동을 쌀 수밖에 없는 그들임을 알게 한 사건이었다.
우선 국가적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는데 해결책이 없다. 경제력은 체력으로 국력으로 연결되는데 이제 막판에 도달한 자기 정체감을 드러낸 것이다. 퍼주는 남한의 지도자를 기대하기에는 가망이 없어보이고.....
또 가을이 지나는 데도 먹는 문제가 심각한 싯점에 달한 것이다. 한 해가 다 가름되는 싯점인데 농사가 풍년이 아니었고. 농민들의 시름과 소요는 생겨나고.....
또한 세습을 시도하는데 인터넷 문화가 번저가는 싯점에서 것잡을 수 없는 국내외적인 따가운 시선과 불만을 해결할 길이 없는 그 정권이 마치 고양이 앞에 몰린 쥐 신세가 된 것이다.
나아가 군인들의 요동은 말할 수 없이 일어나고 있어 그런 행동을 저질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고립화 현상과 자기네들과 맛대할 나라들이 없음은 소위 왕따 당하는 모습에 잘못된 사고로 해결을 하려고 그런 불작난을 한 것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북괴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흩어져있는 한국의 디아스포라를 북한은 자극하지 말아라.
선량한 연평도민에게 포탄을 살 돈도 없을 터인데 포 쏘아대지 말아라.
더구나 민족의 자긍심을 버린채 중국에 나라를 퍼주려고 하지 말아라.
정상적인 사고와 인터넷 문화로 남한의 호국군사 훈련을 잘 파악하여 그렇게 오인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경고한다.
이런 주 적을 돌본다고 가져다 퍼 주는 망국적인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다.
가져다 주는 것이 전부 포탄이 되어 되돌아와 해병을 죽이고
민간을 죽인 꼴이 되었다.
우상화되고 정복해야될 곳인 김정일 왕국에 심판만이 남았음을 예비하게 된다.
감히 한국에
연평도에
해병대에 발포를 하였다니.....
해병대여 일어나라.
조국이여 일어나라.
조국의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위하여.
다음은 필자가 연평도 사랑을 20여년 전에 지면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 젊음을 연평도에'
'이 젊음을 연평도에' 라는 글은 해군의 '군종교육지' 107호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활천지' 406호와 '서울신학대학 신문'(1985. 2)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해병대에서의 군 생활을 시작하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던 일이다. 주권자 하나님께서 나를 소명하신 사건이다.
이 글은 부임 후 100일 동안의 활동상황이다. 1983년 8월 0일 부임의 명을 받은 저는 선편이 일주일에 한번밖에 없어 8월 0일부로 일찍 들어갔다. 그 이전 특수 도서라는 통칭된 이 연평도에 제가 가리라곤 별로 기대하지 않았고, 섬 생활의 불편함을 감지했던 저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생각했었으나, 돌연 이곳에 보내시는 큰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하면서부터 사명으로 부각되었으며, 일이 손에 꽉 잡히게 되었다.
선임자와 전후방 각지 초소를 파악하며 인사를 드리고 특별히 연평필승교회를 목회 해야 함으로 교회의 제반적인 업무 파악을 하면서 군종 업무의 한 부분인 교회 업무에 큰 계획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교단에서 파송된 군목으로 선배들의 훌륭한 위업에 의욕을 갖고 업무는 시작되었다. 우선 매일아침 부대 모닝 브리핑 시간에 참석해서 부대 상황을 숙지하게 되었고, 쉴새없이 주야간 연속 연평도 전역에 두더지 작전과 탐색작전을 펴면서 장병들을 대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역경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면서 기쁨의 선물을 나누어주었다.
처음에는 이어 받은 오토바이를 탈줄 몰라 힘들었으나 몇 번 넘어지고 숙련되어 낮에는 오토바이로 방문케 되었고, 숙련되기 전까지는 군종병이 운전을 하였다. 야간에는 순회 예배를 드리는데, 이곳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중대를 순회예배 드리려면 몇 회를 드려야만 분초까지 겨우 드리게 되는 불편함도 있었으나, 오히려 장병들은 여기에 기대를 거는 것 같음을 느꼈다.
이렇게 시작되는 야간 방문을 부대장이 마련해 준 짚차로 샅샅이 뒤지게 되었고, 만나는 대원마다 커피와 껌을 나누어주며 손을 꽉 잡고 기도하게 되었다.
"창조와 역사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랑하는 두 대원의 손을 잡고 주님께 기도 드립니다. 저를 이곳에 보내셔서 오늘 두 형제를 만나게 해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연속되는 훈련과 주야간 경계 근무에 몰아치는 피곤함을 참으면서 이겨내는 형제들을 불 때에 든든합니다. 그러나 때로 고향, 친구, 부모 등의 생각으로 작기를 이기기 힘들 때에 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 짧은 기간 동안 삶의 터전을 쌓으며 자기 발견을 함으로 장차 큰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신앙을 허락하옵소서.....아멘".
이런 시간에는 대개 장병들이 손을 더 꽉 잡으며 기도에 자기의 심정을 알리는 듯함을 느낀다.
지금의 전방 내무실에 방문하면 "야! 목사님이시다..." 하면서 아우성이다. 이젠 대원들과 친근해졌고 전 대원이 커피와 껌을 전부 먹었으며 때로는 힘이 들어도 사발면을 갖고 야간 근무자를 방문할 때도 있어 장병들의 사기는 충전해 짐을 느낀다. 이렇듯 전후방 순회 예배, 근무자 방문, 내무반 방문 및 상담과 수감자, 의무실 환자 방문 등은 옥토에 씨앗을 뿌려 많은 열매를 거두듯 교회에 장병들이 쏟아지게 모여들고 있다. 석 달이 좀 지나 장병들이 3배정도 늘어났으며 새 결신자도 90명을 얻었고, 민간인 새신자도 1984년 11월 20일 현재 40명을 얻고 있으며 주님의 은총은 오늘도 계속 역사하고 있다.
젊은 정열을 쏟으며 사재를 털고, 사명을 감당하려고 피눈물나게 활동하니까 주님이 더욱 도와주심을 느끼고 있다. 인천에 있는 도원성결교회와 송림성결교회에서 커피 값을 보태어 정말 긴요하게 썼으며, 감동을 받은 부대장님은 매 달 몇 만원씩 지원해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목사님! 이렇게 활동을 하시면 기둥 뽑아지겠습니다."
이제 우리 부대는 불만 해소가 되고 있으며 해병 부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되는 것 같다. 바삐 다녀도 장병들은 "목사님, 매일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나 분초가 많아 그렇게 할 수 없는 이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옆에 무인도에도 우리 대원들이 있어 2번 찾아갔었는데, 그들은 굉장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예배와 성만찬을 하고 나서 1년에 1번 먹을까 말까한 떡을 먹고 커피, 껌, 과자, 사과 등을 먹으면서 같이 즐기곤 한다. 그러다가도 정기 함정이 나오는 저녁이면 끝없이 손을 흔들어대는 대원들의 모습엔 한없이 동정이 흐르게 된다.
특히 연평도엔 교회가 하나밖에 없어 군목이 민간목회까지 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 쉴 새 없이 뛰어야만 한다. 이제 얼마 안 되는 기간 도안에 부흥회와 제1차 총동원 전도 운동 및 총동원 전도주일, 해군 군종 창설 35주년 기념 예배와 기념 세미나와 기념 군민 체육대회 및 군민 합동세례식, 성찬식, 대심방과 여전도회 전방 위로 방문예배 2회 실시, 유아 세례식, 추수감사절 예배 및 군민 대잔치와 교회 학교 발표회 등 갖은 행사를 다하게 되었다. 이렇듯 교회는 성장하여 민간인 중심인 한나선교회도 창립되었고 신우회도 부활되었으며 중창단도 조직되어 다채롭게 교회성장을 하고 있다.
또한 이곳 기지에는 해군들도 있는데 그곳과는 친밀히 지내며 10일에 한번 이상 찾아가 기지장 및 대원들을 만나곤 하여 온갖 연평도는 내 교구임을 잊지 않게 하는 것 같음을 느낀다.
이렇게 하면서도 좀 더 대담하고 좀 더 깊이 파고드는 선교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좀 더 적극적인 후방 교회들의 지원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주여! 연평도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 이것만이 나의 소원이며 정열인 것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우리는 신뢰한다' 미국 모토 맞다. (0) | 2011.11.12 |
---|---|
어려울 때 삼겹줄 신앙 효과 (0) | 2011.01.02 |
잣나무 교회 (0) | 2010.11.12 |
항상 기뻐해 (0) | 2010.10.24 |
사람 잡는 자 (0) | 2010.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