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엘리야

엘리사의 예언적인 파워

ULI 2009. 7. 6. 00:22

엘리사의 예언적인 파워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예언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 국제관계 전문지포린폴리시에 보면, 많은 이들을 공포에 떨게 할 만큼 충격적이고 그럴싸했지만 수년~수십년 뒤 보기 좋게 빗나간 예측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대폭발에 따른 ‘인류 멸망’ 시나리오가 사람들을 짓눌렀습니다.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이 뿌리가 된 이 예측과 관련해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는 ‘인구 폭탄’(1968년)에서 “1970~80년대에 어떤 비상조처를 내놓더라도 수억 명이 굶어죽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출산율 증가세는 꺾였습니다. 2050년에 세계인구가 120억 명에 이른다고 1968년에 예고한 유엔은 이후 예상치를 90억 명으로 낮췄습니다.

2) 지구 냉각화라는 예측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1940~70년대 기온 하락을 근거로 대부분의 기상학자들이 이 예측을 지지했습니다. 태양 흑점의 운동이 한 원인이고, 공해물질이 태양광을 지구 밖으로 반사시킨다는 우려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인들은 온난화라는 재앙을 걱정하는 처지에 빠졌고, 공해물질이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됩니다.

3) 1980년대에 널리 퍼진, 일본 경제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를 평정한다‘팍스 자포니카’론도 과장된 예측으로 판명났습니다. 일본의 경이적인 경제 성장과 일본인들의 뉴욕 록펠러센터 매입 등이 미국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1990년대에 거품 경제 붕괴를 맛봤고, 미국은 정보통신산업 등에 힘입어 최강자 자리를 지켰습니다.

4) ‘제2의 9·11테러설’도 아직까지는 현실화하지 않았습니다. 2001년 9·11테러 뒤 많은 전문가들이 알카에다가 미국에서 곧 비슷한 테러를 저지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5) 이밖에 2차 대전 뒤 금방 지배적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원자력이 냉전 체제와 비싼 시설비용, 안전 문제 때문에 대체 에너지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빗나간 예측으로 꼽혔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사는 그 말의 위력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내시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한 인간의 미래나 적대국 형편이나 개인 심령을 진단하고 언어사역을 펼치었습니다.

첫째로, 엘리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그 믿음의 말에 위력이 있었습니다.

왕하 5:1 이하에 보면, 아람나라의 구국공신이며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소녀가 한 엘리사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고자 이스라엘까지 찾아왔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의 엘리사는 한 방에 고치시는데.”

그 이후 찾아온 그를 문간에 세워두고 문등병에서 치유 받기 원한다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라’ 명령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 그 나아만은 “뭐 저런 자가 다 있어!” 하면서 괴씸하다고 하면서 뒤돌아설 때에 그 신하들이 말렸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물에 일곱 번 씻으면 낫는다는데 일단 해 보시지요.”

그가 그렇게 하였을 때에 깨끗하게 치유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나아만이 자기 아성에 지배되는 것을 다 빼내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록 고치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리고성을 정복하는 여호수아의 작전명령과 같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서는 여리고성을 칠 일간 돌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싸우지도 아니하고 그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이라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인 것이었습니다. 믿고 따르느냐 불신하느냐의 문제이었습니다.

오늘 엘리사도 평생을 명령권자로 살고 있는 군대장관 나아만에게 그 언어의 위력을 실감하도록 그는 단지 말씀으로 “요단강물에 일번 씻으라고 전하시오.”

그는 말씀의 권위가 대단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치료하실 것도 믿었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대한 신뢰도가 대단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 신앙입니다.

구원은 어떻게 성사됩니까? 언어로 전달됩니다. 우선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따르는 것은

1) 창조의 원리입니다.-하나님께서 가라사대로 창조하였습니다.

2) 구원의 원리입니다.-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3) 선교의 원리입니다.-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4) 축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족장들에게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언어로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기 의지를 접고서 완전히 순종함으로 요단강에 씻어 정결케 된다는 비밀을 온 나라 백성들에게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계시이었습니다. 당시 순종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때이었습니다. 더구나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하는 자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엘리사는 일생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생도단을 귀중하게 여기에 내가 지금 할 일은 그들의 뒤를 돌보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소상하게 돌보아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를 치던 때이었습니다.

오늘 엘리사는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 문둥병 때문에라도 믿고 순종하게 하엿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치유되는 현장을 보고서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요단강물에 일번 씻으라.”

여기 요단강은 이쪽저쪽을 연결하여 주고 또한 이 나라와 저 나라를 구분 짓는 아주 중요한 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것을 건너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세상나라에 머무는 광야백성이 되느냐의 분수령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옛 것과 새 것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이 강이 세례요한의 시대에는 새사람이 되는 세례의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 예수님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 강은 예수 믿고 건너는 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강을 예수님으로 생각해 보면 은혜가 됩니다. 이 강을 통하여야하고 또한 건너야만 합니다. 그래야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기 요단강에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물에 씻어 정결케 되었습니다. 세례식이 이곳에 성행하였습니다. 세례식을 받고 심령이 치유되었고 새 활력을 찾았습니다. 새 시민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는 파워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찬송가에 있듯이 요단강을 건너가면 천국을 이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는 새로 완성된 상태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씻음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핏물로 씻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13-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