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5대 은총
부활절 (요 20:19-29)
우리는 지난 한 주간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보냈다. 멜깁슨 감독이 복음서를 연구 상상하면서 만든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고 주님의 십자가 행렬을 생각하면 인간의 죄 값의 무서움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죽으시면서 가장 고귀한 것을 표현하시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한아 네 어머니이다”(요 19:26-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다 이루었다”(요 19:30).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처럼 예수님은 죽음의 순간 용서와 책임과 위탁을 이루시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1. 나폴레옹은 죽는 순간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세 가지를 중얼거렸다.
"내 조국 프랑스...,
충성스런 군인...,
사랑하는 아내 조세핀..."
그의 고백에는 인생을 마감하는 아쉬움이 짙게 깔려있다.
2. 베토벤이 죽음을 맞으며 읊조린 말 속에서는 진한 허무와 체념이 묻어난다.
"친구여, 이제 희극은 모두 끝났네."
3. 톨스토이도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이제 나는 어찌할 것인가."
4. 독재자 스탈린은 임종할 때 두 눈을 부릅뜨고 왼손을 내저으며 저항했다.
“야, 너 저리가라.”
그러나 그는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사람들의 죽음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죽음이 있다.
한경직 목사의 생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한마디로 부활의 생애이다.
그는 1902년 태어나 오산 중학교 졸업 교장 조만식 장로로부터 민족 의식 고취, 숭실전문을 나와 미국에 가서 엠포니아 보수주의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그후 그는 프린스톤을 졸업하고 예일대학 신학박사과정 시도 중 폐병으로 죽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6개월 만에 회복되어 한국의 신의주 제 2교회와 베다니교회 개척하고 공산당 치하에서 월남하여 그들이 다시 집결하여 오늘의 영락교회를 개척하게 하였다. 그는 선교 교육 봉사에 지대한 공헌자로 영국 왕실이 주는 종교인 노벨상인 ‘템플턴 상’을 받았다.
그를 괴롭힌 죽음이 그를 절망하게 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었다.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예수님의 머리에는 가시관, 손과 발에는 못이 박혀 죽어가면서 그는 평안한 모습으로 말했다. 사망의 고통을 넘어서는 말을 남기었다.
"다 이루었다."
천사들은 빈 무덤을 가리키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였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셔서 그 무덤 속에 계시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것을 체험한 여성들이 외치기 시작하였다.
여성들은 위기 때마다 대단하였다.
탄생 때에도 여성이 그 창조적인 역사를 받을 수 있었다.
십자가 사건 때에도 끝까지 지키시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잠시도 한 눈 팔지 않았다.
결국 그 부활을 목격하는 최초의 그룹이 되었다.
그 부활의 증인들도 여성이었다.
왜? 여자에게 먼저냐?
입이 싼 것을 활용하였다고도 한다.
실은 여성의 아주 잽싼 표현력을 이용하여
너무도 빨리 전하여야 할 소식이었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소식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었다는 소식이었다.
여기에 큰 신앙의 바람이 일어났던 던 것이다.
소위 기독교의 바람이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큰 기쁨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며 복음전파의 핵심이다.
성도들이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을 기둥으로 삶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축복을 받아가는 사람들이다.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신 다섯 가지의 은혜가 있다.
첫째, 평강의 복을 주셨다(20: 19, 21, 26).
둘째, 선교적 사명을 주셨다(21).
셋째, 성령을 주셨다(22).
넷째, 사죄권을 주셨다(23).
다섯째, 믿는 자가 되게 해 주셨다(27).
그렇게도 의심덩어리였던 도마는
단 한번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의심에서 벗어났다. 그는 예수님을 "나의 주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이분이 곧 그리스도 구세주이시고 하나님이시다는 의미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것이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흔적을 눈으로 보았을 때 만져보지 않았어도 믿을 수 있었다.
한 때 그는 멋모르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고 하였다.
그러한 도마가 "주님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가 없다"(요 14:5)고 하였다.
그리고 뭐 그리 바쁜지 예수님의 부활체험 때에 도마는 없었다(요 20:24).
이런 그가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나타나서
“도마야 한 번 만져보아라.
손과 발을 확인하여 보아라.
옆구리를 확인하여 보아라.”
이렇게 자기에게 보여주니까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요 20:28).
여기서 주님은 명언을 남기시었다.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도마보다도 더 축복된 신자가 있을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베드로는 벧전 1:8에서
"보지 못하나 믿는 사람에게" 서신을 씀으로 그러한 신자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의 첫날에 모이는 것은 바로 부활 신앙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주일은 부활의 날이다.
이날은 하늘 문이 열린 날이다.
이날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는 날이다.
주일은 생명이 내리는 날이다.
이날에는 천국 생명의 축복이 내리는 날이다.
이날은 성령께서 자유자제로 활동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 함이다.
말씀을 주신 것은?
생명을 주시려 함이다.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에게 하늘 생명을 주시려함이다.
부활하심은?
주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풍족하게 주시려 함이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의 축복에 거하는 부활 생명을 받아 기쁨의 복을 누리길 원한다.
예수 부활의 능력은?
죄와 사망을 이기신 생명의 능력이요
구원의 능력이다.
두려움을 평안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의심을 믿음으로 변화시키는 절대 능력이다.
부활의 이 아침에
우리의 잠들었던 영혼이 다시 깨어나고,
게을렀던 것을 회개해 열심을 내며,
영혼 깊은
속으로부터 새로운 각오와 놀라운 감사의 고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다 살리신다.
마가복음 16장 6절에 살아나셨고(에게르테)는 "살리심을 받았다"는 뜻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고전 6: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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