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권 지도력

발제1. 성탄의 예수님의 사회 리더십

ULI 2021. 12. 13. 16:14

발제1. 성탄의 예수님의 사회 리더십

성탄 리더십 포럼

주준희 박사
서울대 정외과
뉴욕주립대학교 국제정치학 전공 Ph.D.
LA 동시통역대학원장
서울대학교 강사
에모리대학교 교수 역임

오늘 “성탄의 예수님의 사회적 리더십”으로 10분간 발표하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리더란 가다가 돌아보면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회적 리더십”이란 개념은 통상 집단의 목표나 내부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속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집단활동에 참여하여 이을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또한 사회를 보다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삶과 재능을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회를 위해 어떤 리더십을 보이셨을까요.

먼저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오신 것은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하려 오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회의 유지, 개선,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었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인 어떤 지위도 권력도 없었고, 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삼위일체 하나님인 예수님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영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후 보기에 좋다고 하셨으나, 인간은 불순종으로 죄를 짓고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예수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창조주 하나님과 본체인 구속주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사흘만에 부활하여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당시 사회의 사람들은 수천 수만명씩 그를 따랐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 하시고 가신 후 2000여년 동안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시켜 왔습니다. 누룩이 가루 서말을 전부 부풀게 하듯이 (마 13:33), 겨자씨 한 알이 무성한 나무를 이루듯이 (마 13:31-32), 예수를 믿어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영역에서 실천한 믿음이 사회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현재 기독교 문명권의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 인권사상, 복지 체제 등 사회적 변화가 그러합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따르는 예수, 기독교 문명권에 가장 큰 사회적 영향을 미친 예수님에게 사회적 리더십의 개념을 굳이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에이전다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이 잔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셧습니다. 자신의 사상, 이념, 능력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 사랑으로 인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진정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두번째, 투철한 소명의식과 비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자,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자신의 소명을 알고 있었고 이에 입각하여 모든 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소명이 예수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세번째, 소통의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자신을 따르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에게 당시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던 구약의 언어를 사용하여, 설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이고 왜 왔으며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될 것인지를 늘 소통하셨고, 공통 개념틀인 구약의 지식을 통해 공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에서 분리되어 교회 속에 머무신 것이 아니라, 사회 속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따랐습니다.

네번째, 행동하는 권능있는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은 늘 사랑을 실천하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잔치 집에 물이 변해 포도주 되게하셨고, 아픈 자들의 병을 고쳐 주셨고, 귀신들린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고, 죽은 지 사흘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다섯번째, 섬기는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자신을 낮추어 종같이 되었고, 창녀와 세리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으며,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겸손하고 온유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주엥 큰 자는 절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누가 22:26) 이 뿌리에서 기독교문명권의 민주주의적 사회발전이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여섯 번째, 혁명적인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은 보수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한 시간과 공간에서 협소하게 붙들고 있는 상대적인 가치와 관습과 제도를 넘어서는 절대적인 진리를 가르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것은 종종 혁명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적 엘리뜨인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시며 그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셨고 (마태 23:27), 당시 유대인들이 천시하던 이방인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고, 여성은 증인이 될 수 없던 당시 마리아가 가장 먼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28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이니라”고 합니다. 이 것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으나, 사회적 혁명이 예수님의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에게 “진보적”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도 없습니다. 형에게 명하여 유업을 나누게 해달라는 제자에게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누가 12:31-21)고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의 생각을 인간의 이데올로기 적 틀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할 것입니다.
성탄절,
인류의 역사를 뚫고 들어 온 하나님의 본체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들 하나하나의 삶을 통해 성령의 열매로서의 사회적 리더십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