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이사야의 영적 각성 설교

ULI 2009. 7. 13. 09:02

남 왕국 유다의 웃시야 왕과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그 나라를 최고의 번영의 나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번영과 함께 지도력에 악이 들어왔습니다.

역대하 26:22에서

"웃시야의 남은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고 한 말씀을 통해서는 이사야가 웃시야의 죽기 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이사야가 웃시야의 행적을 기록한 정황으로 보았을 때 그는 왕의 연대기나 행적을 기록하는 궁중 서기관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야가 궁중 서기관이었다면 그의 예언에 세계사적 시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사야는 남 왕국 유다에 살면서 웃시야 왕이 죽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민족과 세계 선교에 부름 받은 대예언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오늘은 예언자 이사야가 영적 각성운동을 한 것을 직접 찾아보면서 은혜를 입겠습니다. 그는 회개를 외친 하나님의 예언자입니다(사 1:2-18).

그는 엘리야 같이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는 머리털로 만든 옷을 두르고 다녔습니다.

마치 세례 요한의 약대 털옷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사야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귀족의 옷차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명을 내놓은 설교가 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그는 천재적 시인의 기질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위대한 웅변가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이것은 언어 구사력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필요한 경우에는 사회악에 대하여 담대히 말하였고, 한편으로는 사랑과 온유함으로 하였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이사야 6:5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경험하면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순간 제단숯불로 그 입술을 정케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할 때에

“나를 보내 주세요.”라고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대 사회 예언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은 자(remnant)를 통하여 역사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남은 자를 남겨두십니다(사 1:9, 6:13). 남은 자에 대한 사상은 이사야서 전체에 흐르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남은 자가 역사의 그루터기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역사를 감당하였습니다. 그 남은 자는 자신의 임자가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회개의 설교자이었습니다.

그 나라의 정치권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성전 안에까지도 죄악으로 가득 찼음을 알고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이 세상 변호사를 더 의지하는 행위가 넘쳐났었습니다. 하나님의 법 보다는 세상의 권위에 의존합니다. 그러니 이런 행위가 하나님 앞에는 죄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돈을 내어주면서 더욱 변호사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습니까? 그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화만 키운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1) 부동산 투기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사 5:8).

2) 독주와 포도주에 취하여 살았습니다.

이런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11).

3) 거짓을 일삼았습니다.

이런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18).

4) 악을 선하다하며 선을 악하다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20).

5) 스스로 지혜롭다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였습니다. 이러는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21).

6) 포도주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러는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22).

그의 설교는 아주 강력한 설교였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는

아주 듣기 싫은 설교이었습니다.

실제로 유다 나라의 히스기야 왕은 그의 말을 받고서 회개기도하고 병 고침까지라도 받았습니다. 이사야 38장에 가보세요. 그는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왕의 아들 므낫세 왕은 아버지와는 영 달랐는데 급기야 듣다못해 “그를 톱으로 죽여라” 하여 그렇게 순교시켰습니다.

그만큼 그의 설교는 강력하였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의 설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또한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설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나아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가름하시는 어간감람산 강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장로들이여.이 회칠한 무덤 같으니.”

참으로 설교자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할 수 있을까 여서 말입니다.

대개가 설교가 어렵거든 여.

우선 잘하는 설교는 무어라 생각합니까?

1. 들리는 설교입니다.

2. 보이는 설교입니다.

3. 감동 있는 설교입니다.

4. 움직이게 하는 설교입니다.

5. 주께서 영광 받으시는 설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을 전하는 설교냐 이것입니다.

그럼 못하는 설교는?

1. 안 들리는 설교입니다.

2. 안 보이는 설교입니다.

3. 감동 없는 설교입니다.

4. 움직이게 하지 못하는 설교입니다.

5. 주께서 영광 받지 못하는 설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회중은 어떤가요?

오늘날 우리 교인들은 어떠한 교인들인가요?

1. 나팔꽃 교인이 있습니다. 주일 아침에만 잠깐 얼굴을 보이고 한 주간 축 쳐져서 사는 교인입니다. 주일에만 잠간 교인일 뿐입니다.

2. 해바라기 교인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교인입니다. 자기가 모시는 상사에 따라 신앙이 요동칩니다.

3. 감투 교인이 있습니다. 감투를 주어야 교회에 나오는 교인입니다.

4. 인력거 교인(소 꼬투레 교인)이 있습니다. 심방을 가서 끌어내야 나오는 교인입니다.

5. 미꾸라지 교인이 있습니다. 봉사하는 데에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잘 빠지는 교인입니다.

6. 벙어리 교인이 있습니다. 친구끼리 모이면 그렇게도 말 잘하는 사람이 교회에 오면 대표기도 한번 못하는 교인입니다.

7. 시험 채점관 교인이 있습니다. 설교를 채점하거나 봉사하는 자들에 대하여나 남의 흠이나 잡는 교인입니다.

8. 유람선 교인이 있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 왔다 갔다 하며 정착하지 못하는 교인입니다.

9. 묵상 교인이 있습니다. 집에서는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면서도 교회만 오면 조는 교인입니다. 미사 드리나 봅니다.

10. 국회의원 교인이 있습니다. 가족 대표로 혼자만 교회에 나오는 교인입니다.

11. 석가모니 교인이 있습니다.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것 같은데 뭘 요구하고 달라는 듯한 행동을 가진 교인입니다.

12. 땡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설교시간에 맞추어서 들어오거나, 설교가 끝나면 종치듯이 슬그머니 나가는 교인입니다.

여기 열두 종류의 교인들 중에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이런 차원의 교인이라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사야의 외침을 이 시간 다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이사야는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야 섭섭해’ 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거나 알았어도 외면하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사 1:2-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2) 이사야는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이 나쁜놈아’ 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말을 듣지 않고 자구 허물을 만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는 악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버린 자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3) 이사야는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그것도 제물이냐 내가 홈리스냐 기가 막히다’ 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꼴이 웃기기 때문입니다.

너무 예배자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 예배자만도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인도 펀잡주에 교회 건축을 해주고 헌당식에 집례자가 되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 시크교 본산 템풀이 있습니다.

그곳은 사방으로 출입구가 있는데

전부 지킵니다.

이는 다 신을 벋고 발을 흐르는 물에 씻고 정결하고 경건하게 들어가라는 것이지요.

탐방 갔었다가 혼난 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신앙성이 쉽고 편안하여만 됩니까?

우리는 잘못된 인본주의로 너무 물들어 있습니다.

경건함을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그정도가 아니라 교회 나오는 것이 악을 도모하기 위하여 나온다는 아주 굉장한 설교를 한 것입니다.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 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4) 이사야는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주둥아리만의 기도는 집어치워라’ 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행동은 피를 내는 짓을 하면서 기도만 뻔드르 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하는 악한 일을 정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손을 정결하게 하라는 것이엇습니다.

사 1:15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5) 이사야는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그래도 내가 기회를 주마. 너희 죄를 내게 가지고 나오기만 하라’ 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넓은 품을 열어놓고 기다리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참 사랑이시다고 하였습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2: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 이사야는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것을 다 버려놓았다’ 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극상품 포도나무이었는데 들 포도로 변질시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갈수록 그렇게도 타락하냐 라는 것이엇습니다.

더 살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옛날 모세이니까 그렇지 정말 아찔한 것 아닙니까?

정말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수 있는 자로 살수는 없느냐?

이것입니다.

사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처음 자세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그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참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살인을 그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고백적이고 성결한 기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5:2에서 말씀하듯이

우리 모두는 땅을 깊이 파는 것 같이 마음을 파서 돌을 제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도록 망대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를 잡아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생산적인 영적인 활동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 포도나무의 결실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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