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생명력을 지닌 엘리사영성
우리들이 성령충만하면
그 마음이 아량이 넓어지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려고 하고 손발이 움직여집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하게 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엘리사는 한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큰 권능을 행사할 때가 있었습니다.
은사에 성숙함이 없으니까
그 언어가 거칠었습니다.
그 행동이 부드럽지 못하였습니다.
감정적인 모습도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최선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소위 초기에는 믿음이 제일인줄 알았는데
사랑이 더 큰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권능을 자기 능력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다가 곧바로
만인에게 평화와 건강을 주고,
특히 자기 생도단원들의 인생살이의 행복을 더해 주는 것으로 선회하시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섬김의 생명력’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첫째로, 엘리사는 헌신적인 신자에게 섬김의 생명력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4:18 이하에 보면,
엘리사는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는
수넴 여인의 가정에 생명의 축복을 확실하게 보게 하여 주었습니다(왕하 4:18-21, 32-37).
엘리사는 예루살렘성전 출입을 못하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신자들을 위하여 수넴마을에 심방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사는 참으로 감동적인 부유한 여신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유층들은
대개가 참선지자와는 등지고 거짓선지자와 놀아나는 치세였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여인은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참으로 헌신적이었습니다.
그 여성은 복음사역자를 위하여
주도면밀하게 봉사하는 귀부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섬김은 아주 순수하였습니다.
그런 가정인데 한 가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각 가정마다 다 이러한 한 가지 부족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사와 능력이 많이 나타나는
선교목회자이었는데 자신은 늘 골골 거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그러하였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충만해 보였는데 수십 년 동안 직계 자녀가 없었습니다.
오늘 엘리사가 만난 그녀는 아들이 없었고 그 남편은 늙었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섬김에 감동을 받은
엘리사는 그 가정에 정말로 필요한 생명의 축복기도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 해에 득남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애지중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그 자녀가 일터에 부모님을 따라나섰다가 일사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미는 생각나는 것이 선지자이었습니다.
사귐을 틈틈이 가진 선지자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그 엘리사를 찾아가서
기도를 받고서는
그 아이가 다시 살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순수함에 하나님도 감동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라도 일으키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는 수넴여인의 가정을 생명적으로 온전하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여야 큰 축복을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당하고 난리부터 치지 말고
믿음의 기도를 받는 일을 우선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채워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부활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사려 깊은 믿음의 헌신과
사모하는 기도 모임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생명적인 현장을 목격할 수 있게 합니다.
더구나 사려 깊게 헌신하는 가정들에게는
선을 더욱 베풀어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기도해 주는
믿음사역을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나아가 서로 사랑을 하며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엘리사처럼 사람을 살리는 사역이 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왕하 4:32-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둘째로, 엘리사는 선지자의 생도단원들에게 각별하였습니다.
1)우선은 길갈에서 먹는 문제에 심각한 선지자 생도의 가정을 해결하여 주었습니다.
그 가정의 솥 안에 있는 음식물의 독을 제거하여 주었습니다(왕하 4:38-41).
그는 길갈에 이르러 자신의 선지자 생도를 만났는데 그가 흉년으로 어려울 때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생도를 위하여 엘리사는 사환을 시키어서 초기의 제단과 수도이었던 길갈에서 얻은 야등 덩굴의 들 외를 따다가 국을 끓여서 먹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라도 생명을 유지하게 해 주어야 하겠다고 하였는데 거기에 사망의 독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는 그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솥에다가 가루를 던져서 그 독을 제하여 먹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엘리사는 언제나 영적으로 민감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직감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열왕기하 2:19에 나타난 여리고의 좋지 못한 물에 소금을 넣음으로써 정결케 하였던 일과 동일합니다.
여기 가루는 무엇을 의미한 것입니까?
그것은 제사제도에서는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가루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전 희생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는 100% 헌신의 상징입니다.
그것도 대속적인 헌신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망가뜨리는 그 솥 안의 독을 해결하여 주시었습니다. 이 가루를 던지고 가져다주라고 하여 가져다 줄 때에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흉년의 시절에 먹을 수 있는 국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언자의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섬김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섬김의 선포는 해독케 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에도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접하는 자마다 사람을 죽이는 악한 독균이 없어지고 해독하는 곧 죄악을 회개하는 생명의 능력이 나나타납니다.
사람을 살리고자 하고,
선지자의 생도의 가정을 돕고자 하는 사랑의 언어가 있을 때에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곧 마음의 해독이 일어납니다.
더구나
자애로운 전도자의 십자가 복음전도는 죽을 목숨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곧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3:19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나아가 이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가루와 같이 되어 완전 희생된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설교 중에 사도행전 3:16에서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생명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됨을 말씀하였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완전한 헌신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은 생명의 구원을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거기에 죄인을 구속하시는 완전한 속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완전 해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왕하 4:41-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2)다음으로는 엘리사는 의롭게 살고 있는 100명의 생도단 무리들을 먹이기도 하였습니다(왕하 4:42-44).
엘리사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이 만든 우상종교(왕상 12:26-33)와 타협하지 않고 따로 하나님을 섬긴 100명의 생도단을 아주 귀하게 여기었습니다. 그는 이들을 마치 존경받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처럼 여기었습니다.
그 당시 참 신앙인으로 살기가 힘든 때에
거짓 없는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생도들에 대한 그의 배려는 마치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헌신을 인정하여 주시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기적을 보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에 대한 마음가짐은 아주 중요한데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충만하였습니다. 이 긍휼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넘치는 역사가 따라옵니다.
성경에 보면, 주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은 곧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나에게 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한번 긍휼사역을 해 보신다면 그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때 우선 무리를 불쌍히 여기었습니다.
보스톤에서 집사님이 그렇게도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아 득남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하람 요셉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갓난아기가 아토피로 온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애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이 짠하였습니다.
내가 겪어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이민까지도 결심하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을 두고서는 특별명령을 내려서
‘7번 잠기기 새벽기도운동’을 하게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타난 엘리사의 방법을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자녀들을 들쳐 업고 나오게 하였고
특별히 온 새벽 교우들이 손을 얹고 합심기도를 하였습니다.
요단강에 아람나라 구국공신인 군대장관 나아만을 꾹 눌러 일곱 번 넣은 것처럼 눌렀습니다.
그러하였더니 제 1차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병원 의사를 잘 만나게 하여 주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응답의 톨게이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2차 기도운동을 통하여
깨끗하게 낳게 되어서 지금 초등학교에 건강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보스톤에 칠드런스 병원은 유명한 병원인데 거기서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따르는 군중들을 아비 없는 자식처럼 불쌍하게 여기시었습니다.
그 다음에 먹을 것도 해결하여 주시었습니다.
몸뚱이 병도 고쳐주시었습니다.
영혼도 치유하여 구원하여 주시었습니다.
왕하 4:42-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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