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티스토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ULI 2022. 11. 19. 00:41

**성직자로서 국가적 사회적 리더십 활동에 대한 내인생의 음과 양**       

⁸ (김회창 글: 미주 한미 맥아더장군기념사업회 미주대표회장, 한미동맹강화 특위 미주총괄위원장-윤캠프)

제1장 서론적 사건들
1.배경
아버지가 고향 덕적도에 최고로 높은 산인 마을 뒷산 국수봉에서 6 25 이후, 관절염으로 어린시절을 보내며 신앙체험 가지신 장로가 되어, 수개월간 피난민들과 같이 구국기도회를 주도하며 열심히 사신 DNA가 이식한 채로 안동 김씨로 태어났다.
2.선조들 중에는 미국최대의 석유회사의 한국 최초지점, 큰 비단상점, 고기잡이배 십수척, 대지주로서 살았던 증조, 고조 할아버지가 있어서 제게는 사회적 리더십의 DNA가 흐르고 관계형성 리더십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3.그러던 중에 저도 대학진학을 앞두고 기도하다가 고3때 5월 20일에 숭의교회 집회에서 신학을 하게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하는 고3생이 되어 당시 몸담았던 인천 화도교회에 충격이 되었고,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5월에 군종장교후보생시험을 보고 방첩대 신원조회에 합격하여 교단헌법대로 7년을 기다려 목사고시와 사역에 합격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군군목에 선발되어 해병대4년, 해군1년 채풀린 대위로 열심히 사역하여 해병대교회 건축 3곳을 하고 제대하였다. 여기서 예비역 고넬료회 선배들이 연평도 김포 강화도 군교회 건축을 지원하여 자연스럽게 영적인 빚진자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기독 예비역 활동하게 된 네트워킹이 되었다.
4.그 이후 서울 상계동 신개발지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통제부 군수사령부 섬기던 진해 해군교회와 군목 선배의 신덕교회에서 지원해 주어서 군인가족들이 주축이 된 보람아파트 옆에 길갈교회를 개척하여 부흥하게 되었고, 예산 35퍼센트 이상을 선교하는 혁신적 선교중심의 교회로 세계 선교를 리드하였고, 또한 불쌍한 홈리스를 군 100여명을 십여년 매주일 오후에 오니 섬기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의 축복을 받았고 담임목사 가족의 삶은 교회 1층 한구석에서 불편하게 십여년을 지내었다. 선교일념으로 살아서 가족에 한없이 미안했었다.
4.10여년만에 안식년을 미국에 맞았었고, 그 이후에 미동부 보스톤에 몇년 이민목회하다가 한국으로 잠시나가서 부부가 진료중 암초기 판정받고 속편한내과에서 평생 무료진료해주었고  삼성보험으로 고대병원에서 수술받았고, 엘에이에 병치료중 회복하려고 다시 와서 목사의 길에 매진하며 복음방송 임종희목사님께서 동기 해병대 사단장의 안내를 받아 저를 예비역 선교에 매칭시키어서 그후 회칙을 따라서 총11년간을 기독장교회, 기독군인회 회장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기간에 임동선목사의 엘에이군사랑선교회 회장도 물려주어 섬기었다. 나중에 합치어서 오늘에 이르렀고 올해부터 상임고문으로 지도 채풀린으로 섬기고 있다. 여기서 호국 애국심이 계속 배었다. 제가 18살부터 지금까지 국가 사역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제2장 내셔널 미니스트리 하게된 중점 사건들

1.한국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식을 이민자로서 접하는데 그 때는 공중파 방송들의 정보나 일간신문기사들이 좌지우지하던 때이라 해외에서는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후 2-3년이 지나면서 SNS와 유튜버들의 활약으로 팩트체크를 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정치에 관심을 가질 분위기가 아니었었다. 생존 자체에 의식주 자체가 중요하였었고, 선교를 복음전달로만 치중하였었다.
그러다가 첫번째 학위에 통전적 선교 논문을 쓰면서 사회적 책임성의 선교를 지니게 되었다.
2.더 결종적 계기는 대학동기가 한국 대통령을 백악관과 관련하여 MB NOH KIM대통령들을 세우는데 큰역할을 하였다고하면서 H회장을 세우게 되게 되었는데 엘에이에서 가장 보수 리더를 세워 강연하게 하라고 했다고 하면서  졸지에 그들은 못오고 이미 중앙일보에 기사는 나갔고 해서 2017년도 봄에 나는 섬기는 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강의한 ppt자료 참고하여 하였고, 또한 김00박사(나의 대학교 교수, 일리노이주대학교 박사, 미 해군연구소 근무 무기개발경험)하고 강연 대타를 치게 되었다.
저는 세번째 박사논문의 핵심인 복합문화권과 현대 리더십 방향을, 김00박사는 한반도 전략적 무기에 대하여 강연하여, 오히려 그날 강연은 히트를 하게 되었고, 그날 예비역팀들과 지역 리더들을 일백삽십여명이 속사정을 모르고 와서 KUP기자, SBS, KireaDaily, KoreaTimes기자 등이 새 리더십포럼을 목격하였다.
이 행사로 인하여 본인은 큰 오해를 받아 한번도 만나지 아니한 H회장 관련설로 몇년간을 마음고생이 깊었었다. 강연료를 받은 것도 아니고 친구 부탁으로 행사 대타로 치뤄주고 내 카드결재하여 주고 5개월을 아내에게 고생케 한 기억이 한 때 트러우마로 남아 있었었다. 지금도 그 때의 전화기를 쓰는데 H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사담을 소통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앞으로 H와는 연결시키지 말라고 하였고 그후에는 더욱 고집스럽게 보수의 앞잡이로 더 우파활동을 하며 살게 되는 전환점으로 삼았다. 
목회자로 도와주는 것도 삼가야 우파활동을 할 수 있음을 뼈져리게 느꼈고, 내 생각이 짧았었음을 뉘우치며 체험하였다.
3.그 이후 빚갚는 사역으로 노선을 정하고 우선 문재안 퇴진운동을 시작하였다. 예비역기독군인회 활동방향에 2부 행사로 애국활동 호국활동을 가미하여 회칙에 넣어 통과하였고 좌파 척결, 당시 해외 우파들도 거의 속았었는데 우파를 깨우는데에 매진하였다. 그것의 자료들은 각 신문사 홈피에 들어가 제 이름을 치면 수 없이 나타난다. 
거기에 빚진자로서 박근혜대통령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고 "하바드명예박사학위 추천자"(서석구변호사, 이헤리박사, 김회창박사, 엘에이 밈변호사)가 되었는데, 한국에서 서명작업을 공군회관 강연회와 종로강연회, 해밀턴호텔 강연회 대한문 앞 강연회 등으로 140여명의 서명, 예비역 장군들 헌정회원들 앞에서 그 누구도 공산독재정권의 눈치보며 운을 떼기 힘들었는데, 하나님의 소명을 지니고 10분정도 취지설명을 하고(0해군제독 유튜버도 녹화) 서명을 받고 더 받아 하바드에 임 변호사가 올리었다. 3년이 지났는대 내년까지는 기다린다. 하바드는 보통 2년치를 1명씩 결정해 놓기 때문에 기다리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나의 잘못 섬긴 빚을 갚는 형편이 된 느낌이었다.
이로 인하여 보수권의 중심에 서게 되어 마치 사울이 바울이 되어 세계 리더십으로 섬기는 빚갚는 느낌이었다.
4.그후 한국의 하이 리더십을 양성하기 위해 내가 섬기는 콘코디아국제대학교 산하로 그레이트한반도통일리더십연구소를 차리고 기회되는 대로 강연 포럼 등으로 전략적 문화적 정치력 등으로 발표하였다.
이 어간 이 00박사를 처음에 만났었고, 
그분이 알려준 임 00 총재를 예비역기독강연회 호국강연회 특강으로 2번 만났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임 총재님이 제일 따랐던 형님이 나의 "덕적도 출신 프로레슬러 임00와는 아주 가까운 형님 동생"이라고 하면서 "김목사의 이모할머니 가족이니 이제부터는 조카로하자" 해서 그후 3년간 매주 오렌지카운티에 식당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역사를 배우게 되었고, 아주 가갑게 미국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미국과 한국 리더들 리더십 배경사를 전수해 주시어서 이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이었다.
5.임00 총재와의 마지막 시간이 지난 3월 17일 한국가는 비행기에 같이 타고가면서 모신 시간이었다.
한 달여 전에 미0000월드 송00총재가 한국의 진00 여사의 소개로 들어와서 임00총재님이 이미 양자 삼자하여서 거기에 함께 하게 되었고 그 회사 스탭들 십여명, 이00박사도 데니스에 함께 하였었다. 그러한 아버지와 아들이 되었으므로 그후 송00총재는 3월에 윤 대통령 당선 축하식을 한다고, 나는 그 이00박사로부터 연락받고서 나는 형편이 안 되는데.... 임00총재와 미국축하단에게 교통티켓을 제게도 마련해주어 임00총재님의 나와 함께 가자는 부탁을 섬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분과 나는 급하게 부스터샷을 각자 맞고 PCR테스트를 받았는데 결과가  나만 빨리나와 결국 예정보다 1일 늦게 아시아나로 가게 되었다. 타켓팅 과정에서도 임00총재는 미국시민권자라 Q코드에 K-ETA전자비자를 만들어야 한다고해서 제가 도와드리는데 사진화일이 리젝트를 당해서 시간 반을 고생하여 티겟팅 끝나는 15분전에 간신히 되어 휠채어타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였다. 임00총재님은 그날 새벽에 화분을 집에서 옮기다가 팔목이 좀 찢기고 다리가 모서리에 부딪쳐서 좀 부어있었다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져보라해서 터치하여 보았다. 워낙 강하신 체구라 장수하시는구나 느꼈었다. 그날 좌석 두자리에 같이 가면서 세계정치 한국정치사를 다시 말씀해 주시었는데 꼭 유에스비에서 흘러나오듯 하였었다. 거기서 행사장에 가는 것을 머뭇되시었고 한국에 한미동맹 지회들을 결성하러 가신다고 강조하였었다. 송00총재와 이00박사가 주최하는 행사에는 딥스조직으로 오해될 수 있어서 조심하자고 하여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계적 리더십에 프리메리슨의 잔재가 많음을 재차 강조하였었다. 
이제 13시간 걸쳐서 도착하였는데 나는 한국국적이 있어서 쉽게 절차와 코로나검색 신고하였고 자국인 격리하였었는대, 임 00총재님은 박정희장군혁명발족 서명자 72인중에 속해 있었고 국가적으로도 미 백악관 공화당대통령 6명의 특별자문위원으로 아시아의 숨은 민간 외교 귀재, 미공화당사 구입비 절대적 후원자이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무부실로 가라하여서 가보니 "3촌 가족이 있나요 친척 있나요"해서 대전에 누이가 있는데... 연락이 안되었어서... 출국장에서 미0000월드의 환영회를 잠간 갖고서 김포의 코로나 수용소 마리나델레이 호텔급으로 데려가시고 나와는 헤어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날밤이 그분과는 최후의 만남이었다. 
그러한 경력의 후원자인 한인 애국적 리더는 없었다.
그후 호텔급 수용소에서 수십시간이 흐른 후 새벽 6시 어간에 간신히 카톡이 된다고 하시면서 "이곳이 말이아니다. 문재안이를...." 하시었다.
그후 3월 23일에 외국인이 코로나로 풀려나는 아침 9시에 약속대로 나는 롯데호탤 소공동에 가서 기다렸었다.
시간이 지나고 30분을 기달려도 안오셔서 카톡 소통되었는데 춘천에서 밥먹으니 그렇게 알라고 소통하시었다. 춘천지역 한미동맹 리더가 모시고 가시었었다. 저는 당선축하 행사 주최측에서 기다리시니 아버지의 마음으로 오셨으면 했었다. 결국 참석하시지 못하시었고 카톡도 안되었고, 그 다음날에 쓰러지셨다는 전언을 엘에이에 와서야 한미동맹협의회의 강남지회장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분도 자세히 모르고 계시었었다. 병원에서 연락두절이 되었었다. 그후 엘에이에 와서 오00목사님이 나를 만나자 해서 "이제 이일에 관계하지 말라"해서 일체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후 한달 정도 지나서 궁금해서 식도교회 박영빈목사가 이곳에 와서 같이 차에서 동기 소식 나누며 202번지인 임00총재님 집에 들렀는데 마침 며느리가 문열고 나와서 궁금한 사항을 엿쭈었고 그냥 서울에 모병원에 계시다고만 들었고 출타하려는중이어서 금방 아쉽게 헤어졌다. 이 이후 6월30일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이백수 유투버에 나와 듣고 통화하여 소천하심을 확인하였다. 그분도 양아들이었었다. 이것이 제가 아는 전부이다. 
추모행사는 한미동맹회원이 단톡방에 올려서 알았을뿐 더이상 알아볼 상황이 안 되었다. 나중에 추모식을 취소하게 되었음도 단톡방 통하여 알았을 뿐이었다. 임00총재가 한국에 가게 된 것은  미0000월드의 송00총재가 윤 대통령 당선축하식 좌장으로 초청한 때문이었고, 겸사 한미동맹 지회 설립으로 들었을 뿐이었다. 행사기획을 송00총재가 나와하지 않고 나는 초청 미주사절단에 속할 뿐이었는데, 두분은 양아버지와 양아들 사이,  또 이 00박사가 모시고간 전 상원회의의장 대선후보였던 릭000 변호사와 하바드출신 동료 마크 000 등도 3일간 서울 중구에 한 호텔에 갖히어 코로나 감옥살이하다가 한미관계 악화로 출국은 하게 되었는데 나도 그날 출국하였고, 그날 인천공항에서 초청회사의 스탭들과 함께 만나 사진 찍고서 헤어지는 이상한 나라를 방문한 격이되어 버렸다. 그날들은 한국의 코로나 독재의 참사로 기록되었고, 릭 000 전 상원의원은 3일간 공산국가같은 정부의 음식을 미덥지 못하여 단식하였다고 전하였다.
임00총재님이 입원하였었던 3월 24일부터 6월말 동안에 저는 카톡에서도 위하여 기도하여 전달해 드렸었고 보지 못하심, 시간마다 기원하였었다.
그 어르신은 늘 만나 점심식사 전에는 저를 진정성 있는 정직한 목사로 보시고 "기도하세요"해서 간절히 애국심 호국심 리더십 위해 기도후 감사기도하며 진솔한 이야기 들으며 식사하였었다. 그분과 한번 만나면 보통 4시간은 대화하였고, 주로 저는 역사 대하드라마 듣는 시간이었고, 아주 유익한 국제적 리더십 트레닝이었었다.
제가 대학교 운영자요, 기독 예비역 리더요, 교회 지도자로서 목사와 총장의 소양을 갖추고 정성것 모시었고, 그분의 국제적 리더십의 중요 부분을 전수받게 되어 영광스러운 인생의 중요한 하나님의 만남 시간이 되었고, 이제는 홀로 서기하면서 한국 통일을 위하여 갈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소양을 지니신 분들은 저희를 위해 우리 통일 작업 위하여 이 작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God bless you.

 2022. 11. 18.
김회창 씀.
강조
상황화리더십 이양 리더십
이승만건국대통령 뉴리더십
이승만대통령의 서예문화
저술출판 12권

 

 

 

 


1 글을 작성하고 블로그를 관리해보세요.

티스토리에 오신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글은 비공개로 작성돼 있습니다.
'편집'으로 내용을 바꾸시거나, 삭제 후 '새 글을 작성'하셔도 됩니다.
글 뿐만 아니라 블로그의 각종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관리'를 확인해보세요.

 

#2 다양한 스킨이 있어요.

티스토리에 있는 다양한 '스킨'도 살펴 보세요.
블로그나 사이트를 사용하는 목적에 맞게 스킨을 고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실 건가요? 잘 생각해 보시고, 마음에 드는 스킨을 고르세요.
'스킨 편집'을 통해 다양한 커스텀, 그리고 홈 꾸미기를 적용하실 수도 있답니다.

 

#3 포럼에서 사람들과 소통하세요.

마지막으로 사용하시다가 티스토리에 대해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포럼'을 확인하세요.
찾기 어려울 땐 직접 질문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친절한 티슷터 분들이 바로 답변해 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