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Matthew

파라마운트 신앙인 Paramount Believer

ULI 2013. 8. 3. 12:23

 

파라마운트 신앙인 Paramount Believer

 

네팔에 선교사 파송을 하고서 2번을 단기 선교팀으로 방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년설이 수없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에베레스트 정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8,848m이었습니다.

역시 안나프르봉이었습니다.

그 높이가 8,091m이었습니다.

백두산이 2,750m,

남한의 한라산이 1,950m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 4학년 때에

졸업여행을 갔었는데

제주도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학생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것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하나는 먹는 것으로 감귤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꿈에 그리던 한라산이었습니다.

그 산을 수학여행팀 전부가 등정하는데

올라가도 더 올라가야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에 용쓰던 것 다하여

전진 또 전진 하였습니다

오직 봉우리를 향하여 올라갔었는데

그곳에는 봉우리가 없었습니다. 백록담뿐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올라가

봉우리를 하나님께서 제거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음이 왔습니다.

신학생에게 그 거금을 들여 한 그 등정의 의미가 이거였습니다.

목회에는 봉우리가 없다.’

목회에는 끝이 없다.’

목회에는 한이 없다.’

목회에는 정상이 없다.’

 

신자들이 이럽디다.

목회에 은퇴하였다고 홀짝 홀짝하는 분들 얼마나 추해보입니까?’

은퇴한다고 교회 몇 년 예산을 삼키며 작심하고 물러나시는 분들 얼마나 속물로 보입니까?’ 

이래서 지금 한국 기독교나

미국 기독교가 욕을 먹는 경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한라산을 두 번째로 올라갔던 동기가 있는데

샌디에고 00스 교회의 김00 목사입니다.

지금 남서부지방회장으로 잘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자주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 김00, 너는 지칠 줄 모르냐?

멈출 것 같은데 훨씬 더 앞에 가냐!“

결국 네가 일번으로 올라갔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가 멀어서.

중학교는 배 이상이나 더 멀어서

걸어 다니고 또 늦으면 뛰고

성황당을 넘고

비탈길에 앞에가 서서 인사해야 하는,

선배가 앞장서면 인사하기가 번거롭고

긴장이 되서

빨리 갔던 그 파워가 붙어 연단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한라산 등정에 앞 설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이 오늘 설교 준비함에 감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한국 목회를 서울의 최대 아파트 단지 그 당시 60만명이 입주하는

노원구 상계지역에 길갈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김포 강화지역의 해병부대 군목을 하면서

1987년도 초여름 즈음에 생명의 삶 큐티

새벽기도회에 적용하면서

여호수아서를 강해하였었습니다.

그 때에 너 서울에 개척하라?”

상계동 신시가지에 개척하라.”

개척하는데 너 선교중심적인 교회를 개척하라?”

교회 이름은 길갈교회이다.”

그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열심히 준비하는데

진해 해군군수사령부 군종실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해군 군목이면 진해 통제부 한가운데에서 활동해봐라해서 부름을 받아가서 열심히 하였고

제대 앞두고 개척을 준비하였습니다. 

제대 4개월을 앞두고서는 진해에서

서울 신시가지 상계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

18번을 올라와 결국 계약을 하였습니다.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수십만 원인 계약을 하였었는데 믿음의 계약이었습니다.

결국 신덕교회를 맺어주시어서

모자라는 금액을 채웠고 눈물겹게 개척이 성사되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그 여름 1988710일에 첫 예배를 드리어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곳 이민자의 땅으로 오게 하여

목회의 극과 극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연단을 주시었습니다.

지금 12년이 지나지만 올릴 것이 없습니다.

이곳에 말씀새로운교회 7주년

다시 올라가야 할 영감을 받았습니다.

또 올라가겠습니다.

이 곳 다우니 남부지역,

파라마운트 타운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영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차피 목회는 정상이 없으니

또 달리고, 또 오르고

또 사역하여

주님이 정해주신 코스를

달려갈 길을 다 달릴 뿐입니다.

이것이 소명을 감당하는 목회 승리입니다.

우리 교회 지역은 다우니 지역 남부의

파라마운트입니다.

그 의미가

최고의, 최고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산으로 말하면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의미의 산에서

그런 의미의 인물이

수제자라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높은 산에 오르게 되었는데

주님은 그곳에서 계시적 사건을 보여주시었습니다.

모세가 그곳에서 보였습니다.

엘리야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러면 여기 3인이 동등하냐?

아닙니다. 나중에는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나는 말씀에 제일가는 사역자야

말씀에 제일가는 신자야. 100독하였어.

모세와 같아....“

이런 생각이 사라져야 합니다.

또 나는 능력이 많아.

정말로 신비할 정도야. 내 역사가 커.

엘리야 같애....“

이런 생각도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라.

예수님에게 포커스를 맞추라.

그는 화목제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결론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크로즈업 함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고의 신앙인 세례 요한

말씀 간직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주님을 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주님을 높이 평가하였고 그 안에 올바르게 서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이들을 바르게 인도하며 섬기었습니다.

목이 다하도록....

바로 오늘 우리 모두가 점점 악한 세대에서

세례 요한처럼 외쳐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쇄하여야 하리라.

나는 그의 신들메를 감당치 못하겠노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분은 물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

헤롯이여, 불륜, 동성애 그것은 죄입니다.“

심지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로....

여자가 낳은 자중에 제일 큰 자니라.”

이것이 예수님의 평가이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붙들린 순교영성을 키우겠습니다.

오늘부터 그런 파라마운트 신앙인이 될 수 있는 성령이 역사하시길 축복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요한 보다 더 크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