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접목된 인생-개량목-로마서11장

ULI 2009. 8. 30. 23:03

접목된 인생   

롬 11-13-24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다시 하나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게 하사 하나님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인물로 사용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형을 받아 꺾인 자가 되었으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권세를 갖고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되었다. 우리 주님의 생명의 진액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죽인 복종에 스며들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백성을 버리시지 아니하신다(11:1).

하나님의 구원방법은 우리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왜냐 하면, 우리는 조금 살고, 조금 알고, 조금 체험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 즉 전도 방법은 놀라운 방법이다.

본문의 꺾인 가지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다른 접붙임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함을 보여 주고 있다.

접목을 통하여 생명의 진액을 받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문 19절을 보면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꺾여 버림을 받았고

그 꺾인 자리에 이방인을 접목 시켜서 자신의 백성으로 구원하셨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통해서 이방인이 구원받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접붙임의 원리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원가지는 꺾으시고, 그 가지 자리에 이방인인 돌감람나무 가지를 꺾어서 접붙여 주셔 열매 맺게 하시었다(17).

그래서 이방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33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라고 표현하였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전통과 이방인들의 전통을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돌감람나무는

쓸모없고 볼품도 없는 야생목이다. 거칠고 맛없고 저질이다. 그런데 참감람나무 가지에, 꺾인 그 자리에 접붙여져서 개량종이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청교도들의 조상은 해적단들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서는 신사의 나라가 되었다.

독일인들의 조상은 사람을 제사로 드리는 야만인이었으나 철학자의 나라가 되었다.

이들은 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개량되어진 존재가 되었다.

참으로 우리 인생 모두는 다 돌감람나무 같은 야생목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개량목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옛 것을 잘라 주님의 것에 접붙여 주시어서, 하늘의 것을 열매 맺을 수 있는 참감람나무 인생이 되게 하시었다(17,18-)

문제는 개량목 유지를 잘해야 한다.

우리가 개량목이 되어서 좋은 열매를 맺는다 할지라도 자긍하지 말라는 경고이다(19-20).

개량목이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닌 농부에 의해 접붙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신자들도 주님의 크신 은혜에 의해서 변화되고 개량되었다. 주님의 은총만으로 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요 15:1).

또한 돌감람나무에 불과했던 자신을 깨닫고 겸손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개량되어진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또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열매가 없으면 세례요한이 말한 대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이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 맺지 못하는 시들어 버리는 가지는 농부가 제거하기 때문이다. 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하면 제하여 버리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기만 하면 계속 존재할 수 있기에 우리는 주의 생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1)유다 족장의 경우,

그는 원래 장자가 아니었다.

까마득한 넷째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야곱 공동체의 일약 족장이 되었다.

그는 야곱 가문의 대표가 되었고 다윗왕국의 주류가 되었고, 나아가 메시야의 선조가 되었다.

그가 야곱 공동체에 되돌아와 사명자로 거할 때에 하나님은 그 자리를 주시었다.

2)솔로몬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다윗 왕의 본처의 아들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첫 아들 둘째, 셋째 아들도 아니다. 열 번째 아들이다. 그런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다윗과 언약한 성전건축을 위함이었다. 시바 여왕은 당신은 하나님을 위한 왕이라고 충고하였다(대하 9: 8). 그의 전반부는 일천 번제 신앙과 성전건축 등 소명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후반부는 교만해져서 세상 것들, 이방 여자들과 부귀영화 등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 그는 그것을 스스로 헛되고 헛된 인생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분열로 선민의 수치를 드러내게 되었다. 우리 신자들은 자신의 신분상승을 겸손함으로 지켜가야 할 것이다.

막내였던 다윗의 경우도 그렇다.

본문 19, 20절 말씀을 보자.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함으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