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사도행전 4:5-12에 보면,
성령충만함으로 베드로가 베드로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성령님은 역사하시는 분, 곧 현재화하시는 분이십니다.
1)성령님은 계시에 있어서 보면,
아버지가 계시자(Revealer)이면,
그 아들은 시간과 공간에서 계시하신 분,
곧 계시 자체(Revelation)요,
그 성령님은 그것을 우리 안에 계시 되도록(Become revealed) 하시는 분이십니다.
2)구원에 있어서 보면,
아버지가 계획하시고,
아들이 조건을 마련하시고,
성령님은 그 구원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에 대하여 로후만 박사는
성령님은 하나님을 현재화 하시는 분으로 주장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십니다.
이 구원을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현재화하십니까?
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게 하고 증거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심을 확신시키는 일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2:3에 말씀하시기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성령님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요한복음 15:26에서 보면, 우리에게 전하여 주어 알게 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합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서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서 역사하십니다(요 16:14-15).
오늘날 우리들은
성령께서 충만히 역사하시는 시대에 있음으로 우리는 더 큰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고 분부하시었습니다(눅 24:49).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18에서
“오직 너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고 분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구원의 현재성을 목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성령님은 신자들에게 은사를 주어 신자답게 살게 하시어 현재화 하십니다.
성령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은사를 주시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각 지체의 직무’를 수행케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4-7을 읽어보겠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 성령님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증거하며 신자를 진리 안으로 인도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책망합니다.
죄에 대하여 깨우칩니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영’이라는 뜻입니다. 그 역할은 마치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범하는 개인적인 죄(personal sins)는 2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의식적으로 범하는 죄(voluntarily transgression of the known law of God)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의식중에, 곧 부지중에 하나님의 온전한 법을 범하는 죄, 곧 허물(involuntarily transgression of the perfect law of God, known or unknown)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이런 모든 죄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겉에 나타나는 죄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있는 죄의 본질까지 지적하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죄를 자백하면
그 순간 성령께서는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그 순간 우리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자신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 곧 십자가의 공로에 의해서 의롭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성령님은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십니다.
곧 성경이 요한복음 16:11에서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라고 하신 것처럼 최후의 주권자가 주님이심을 깨우쳐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 죄인들에게
성령님의 그 특징적인 역사는 무엇을 가져다 줍니까?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새 바람을 주십니다.
이는 변화를 말합니다. 새롭게 함을 말합니다.
종교개혁을 말합니다.
나의 신앙을 하나님의 뜻 안으로 복귀시켜 주십니다.
둘째. 회개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정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주 목표로 하고 살아갑니까?
너무 멀 리가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돌아가십시오.
셋째.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안에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는 영접을 하는데 주님으로 영접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주님의 종으로 내려앉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증인되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 우리를 전도자로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의 사람이냐 아니냐는 바로 전도적인 삶을 살았느냐와 연관됩니다.
내가 성령충만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전도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기름을 받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파워가 생길 것입니다. 강력한 전도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 힘이 생길 것입니다. 꼭 전도할 것입니다.
또한 손에 힘이 생길 것입니다. 전도하는 손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발에 힘이 넘칠 것입니다.
다섯째. 성숙하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 신자로 살면서 열매를 드러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감동의 신앙입니다.
감동 중에 감동은 십자가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심은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의 대가를 다 치렀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보게 하심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가 살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었습니다.
아무리 그 십자를 감당하라고 하였어도
막상 그 십자가를 지시는 독생자의 헌신에
하나님은 감동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시킨 것이었습니다.
성령님도 여기에 약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도록 신자를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하시고 그런 열매가 맺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감동을 주는 자가 되게 성령님은 그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왜 그렇게 미워합니까?
희락입니다. 왜 그렇게 울상입니까?
화평입니다. 왜 그렇게 불화합니까?
오래 참음입니다. 왜 그렇게 급합니까?
자비입니다. 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습니까?
양선입니다. 왜 그렇게 악하고 깍쟁이입니까?
충성입니다. 왜 그렇게 몸을 사립니까?
온유입니다. 왜 그렇게 거칩니까?
절제입니다. 왜 그렇게 막나갑니까?
오늘 한 시간만이라도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다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예수 이름의 구원을 나타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