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존엄사 자살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자살)에 즈음하여

ULI 2009. 5. 23. 11:07

복음방송 금요 명사칼럼-교회 영성 업그레이드칼럼

한 주간의 세상선교사 업무가 가름되어지는 금요일 오후 4시입니다. 오늘 복음방송에서 말씀새로운교회 담임 김회창 목사가 진행하는 금요 명사칼럼-교회영성 업그레이드

아홉 번째 칼럼이 기대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 사건을 듣게 되어 만감이교차되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잘사는 동네에 더 살인 사건이 많다는 이민사회의 일간지와 방송을 통하여 뉴스를 접한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 내노라 하는 특권층과 연예인들, 특히 교회를 다닌 다는 연예인들의 자살사건은 큰 여파를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자살은 생명 도둑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하고자 합니다.

제가 해병청룡부대에 군목으로 있을 때에 한 사병이 죽어 장례부탁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자살로 판결되어 장례예배 집례를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소속 대대장이나 사단장이 제가 목회하는 교회의 신자이었기에 거절이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한 것은 한 부대장이 좀 섭섭하더라도 자살은 하나님의 생명을 도둑질한 범죄 행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속한 성결교단의 헌법이 자살이나 재혼식을 집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살로 판결된 장례나 재혼식에는 기독교식으로 집행하지 않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분명 온 매스콤이 자살로 보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식의 장례식이 화려하게 치러지는 목회자들의 위선이 하나님 앞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교회와 목사가 자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인을 미화하는 범죄입니다. 살인 도미노를 우려할만한 현상입니다.

우리는 현대사의 독재자가 자기부하에게 총살을 당해 장례를 치룰 때에 고 강신명 목사가 기독교 예식 담당자로 기도할 때에 “그분을 천국에 이르게 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가 행한 대로 가게 해주시고“라고 기도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구데타를 하면서 또 영구 집권유지를 위하여 살상한 대로 가게 해주시고 라고 당대의 알만한 자들는 해석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살인에 대하여 명확하게 범죄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십계명판에 “제 6계명-살인하지 말라”(출 20:13)고 돌판에 새기어 강조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5계명에서 인간관계의 처음이자 시작인 부모와의 관계로 말씀하였습니다.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그 인간관계는 구체적으로 제 6계명에서 인간 상호관계에서 중요한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곧 “살인하지 말라.” 이 말씀은 인간관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생명의 존엄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성경 창 2:7에 의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생명은 창세기 1:27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Imago Dei) 지으심 받았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기에 자의로 살인을 하면 안 됩니다. 살인은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불경입니다.

첫째로, 여기서 말하는 살인은 어떤 것입니까?

1. 국가가 집행하는 공적인 살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국가가 행하는 사형이나 전쟁에서의 살인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에 형벌의 한 종류로서 살인자, 안식일을 범하는 자, 유대인을 종을 파는 행위 등에 사형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간의 전쟁에 있어 살인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정당한 전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심을 가지고 또는 복수를 위한 전쟁은 악한 것이로되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인간의 귀중함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2. 잘못된 개인 욕심을 위한 살인을 말합니다.

여기에 ‘살인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짜흐’(ratsah)라 하는데, 이는 개인적인 살인을 뜻합니다. 그것이 고의적인 것이었던, 고의적인 덫이었던 개인을 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금지하고 있는 살인은 고의성이 있는 살인(purposeful murder), 의도적인 살인(intentional murder), 그리고 계획적인 살인(premeditated murder)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요,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이를 죽이는 일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곧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도적질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즘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영향인지 그저 기분이 상하면 살인 사건입니다.

3.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곧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미움은 욕설로 이어지고 결국 살인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21-22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여기 라가라는 말은 상대방을 경멸하는 말로, 예를 들어서, 미련한 놈, 얼간이, 정신 나간 놈이라고 욕설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계명을 범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여 서로 화목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님은 마가복음 5:23-24에서 다음과 같이 화목 우선을 권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둘째로, 이 계명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까?

1. 자살도 안 된다는 강한 경고입니다.

오늘날 지구촌은 자살 열병에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경우 유명 연애인들의 자살사건이 도미노현상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40초도 안되어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자살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살이 교통사고와 재난, 질병에 이어 열 번째 대로 많은 사망자를 낸 주요 사인(死因)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습니다. 15~44세 사망자의 사인 가운데 자살은 네 번째에 달한다고 합니다.

자살 동기도 천차만별입니다.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진국에선 주로 알코올중독. 가정불화. 무력감 등 때문에 자살하는 것으로 WHO는 분석했습니다.

스위스에선 1999년 자살 건수(1천3백건)가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 건수(5백16건)를 누르는 등 자살이 압도적인 사망 요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은 하루 평균 1백 여 명이 자살하는 ‘자살 천국’이란 오명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90년 이후 계속된 장기침체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서 ‘무능력자로 몰려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 유혹을 많이 받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홍콩에선 1997년 중국에 편입된 이래 경기하락으로 부동산 값, 주가 폭락이 이어져 빚더미에 파묻힌 서민들이 자살 행렬에 뛰어들고 있다고 신화통신이 지난 9일 보도했습니다.

동구권에서는 장기 실업에 따른 생활고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90년대 말을 기준으로 회원국의 청장년층의 자살률을 조사한 결과, 뉴질랜드가 인구 10만 명 당 13.6명꼴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아일랜드(10.3명)와 핀란드(9.9명)순이었다고 합니다.

같은 선진국이라도 미국은 자살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 주목됩니다. 지난 2001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99년 사망자 239만 명을 대상으로 사인을 조사한 결 과, 약 30%가 심장병으로, 그리고 23%가 암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종 사고로 숨진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4%였고 자살률은 1%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tdrud적 배경이 그들의 삶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자살의 90%는 정신적 문제 때문이지만 중국의 경우는 37%가 일상생활의 압박이나 절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중국의 자살자 가운데 절반은 단 2시간의 결심으로 이를 감행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WHO와 IASP가 밝힌 인도의 자살 실태도 놀랍습니다. 매년 10만명이 목숨을 끊고 있는데 이중 20-40세 연령층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14세 이하의 어린이도 4-5천명이나 됐습니다. 자살미수 건수는 자살건수보다 보통 6-20배 가량 많았습니다. 밝혀진 자살 원인은 인간 가정불화, 빚이 주요인이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자살원인의 50-60% 정도는 정신질환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BBC방송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시간당 1명꼴로 자살이 발생하고 있고 자살미수는 20여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나라에서 자살은 3번째의 사인에 속합니다. 자살수단은 총기가 으뜸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극약 복용이라고 합니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문제와 가정불화, 빚, 스트레스, 학업문제, 우울증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폭력과 범죄, 사회경제상황과 인권유린이 스트레스의 요인입니다.

남아공의 자살자는 15-19세 연령층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도 특징입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 요 몇 년 사이에 부산시의 고급관료가 자살했고, 현대기업의 총수가 대우그룹의 고급간부가 그랬고, 연예계 스타들, 수험생들, 특히 초등학생까지 자살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살행위를 영웅시 하나 성경의 가르침은 어떤 경우에도 안 됩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왕이 불레셋 사람에게 죽을 것이 겁이 나서 부하를 시켜서 자살을 했습니다. 성경은 이 모두를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16:28에서 강력하게 저지하였습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살하는 사람도 악한 일을 행한 것이거니와 그를 도와준 사람도 살인을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빌라도와 같이 권세의 자리에 있으면서 살인을 막지 않는 것도 살인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무엘하 17:23에서 다윗을 반역한 왕자 압살롬을 부축인 아히도벨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살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단의 회계를 맡았던 가룟 유다가 배반하여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한 것을 보여주며 계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이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기에 귀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하나님과 사귀기 위하여 성결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아가 남을 도우는 일을 하기 위하여 자기의 건강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엘에이의 코리아타운에 있는 말씀새로운교회 김회창 목사였습니다.

 

복음방송 금요 명사칼럼-교회 영성 업그레이드칼럼

한 주간의 세상선교사 업무가 가름되어지는 금요일 오후 4시입니다. 오늘 복음방송에서 말씀새로운교회 담임 김회창 목사가 진행하는 금요 명사칼럼-교회영성 업그레이드

열번째 칼럼이 기대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요즘의 사회상을 생명경시풍조가 판치는 사회로 말하기도 합니다. “태아는 아직 생명이 아니자나? 그렇게 지낼 바에야 차라리 안락사 시키는 것이 좋잖아?”우린 이렇게 함부로 판단합니다. 지난주에 칼럼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주변에 자살이 횡횡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살인이 판을 치고 있음을 보면서 경악하게 됩니다. 아주 사악한 살인 마귀의 영성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으로 인간을 평생 괴롭히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 악한 영성들이 떠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낙태도 안락사도 다 살인 영성에 속한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낙태도 일종의 살인입니다.

이것은 곧 낙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태아 초음파사진을 비교하여 보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임신 40일의 태아 임신 8주의 태아

우리가 “태아는 인간인가”라는 하는 질문은 사실 낙태라는 의료기술이 개발되고 시행되기 때문에 생긴 질문이지 본래적으로 인간은 이 질문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 남편이 자기 아내로부터 임신소식을 듣는다면 “저 수정아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일까? 또 법적으로 인간 권리가 있는 개별 인격체인가?”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오, 내 아기, 어디 촬영한 태아 사진 좀 보여줘!”라고 탄성부터 지를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가장 확실한 인간 스스로의 대답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나’의 편의를 위해 쉽사리 낙태하는 세태 속에서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도덕적으로 눈을 감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낙태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음에 따라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 도덕성을 보이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 태아가 의학적으로 분명히 수정의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해답을 얻었다면, 우리 인간은 낙태라는 행위를, 그것은 ‘살인’이라는 단어로 확증 지을 것입니다.

사실 1949년까지만 해도 태아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규명하는 태생학 또는 발생학, 태아학(Fatology)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태아는 인간인가?”하는 문제는 개인신앙이나 감각의 영역으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발전은 특히 1970년대 이후 초음파 영상기술, 전자식 태아 심장측정술 등의 발달로 과학적으로도 태아가 유일하고 독특한 별개의 인간이라는 ‘태아학’의 정립으로 이 사실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출발은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난자의 만남으로 46개의 인간염색체를 가진 뚜렷한 인간으로서의 수정아(受精兒)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아지도 아니요, 그 어떤 식물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한 생명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면 아주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원칙적으로 안락사(euthanasia)-존엄사도 안 됩니다.

원래 안락사라는 말은 심한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잠자는 것과 같은 평화로운 죽음을 뜻하는 그리스의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수세기 전 이 말은 말기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동안 가능한 최대한으로 자유롭게 한다는 자비롭고 윤리적 관행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말의 본래 의미를 상실하여 질병의 고통이나 단말마의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조치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안락사는 지킬 수 없는 노인이나 장애자의 생명을 폐기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극도의 고통을 끝내기 위한 '안락 살해'를 뜻하는 보다 특수한 의미로 안락사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살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옛날과 달리 현재에는 인간생명이 불가역적인 죽음의 방향에서 인식되었을 때 합리주의적인 발상에 의해 이를 인위적으로 단축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간의 행위라는 안락사의 정의가 가장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죽음의 의사’라고 불린 잭 캐보키언 박사가 1990년 이후 불치병 환자를 130명 안락사를 시켜 이미 4차례나 법정 투쟁을 벌였던 그가 다시 재판정에 나섰을 때 “인간적 연민 때문에 안락사를 도와주었다”고 주장하여 무죄 석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의를 가진 착한 의사임을 주장하고 적극적 안락사를 130회나 소신 있게 시행하고, 또 방송매체에 자신의 행동을 소개하는 적극적인 면을 보였습니다. 그는 환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당연히 그리고 환자의 요청이 없을 경우에도 적극적 안락사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죽음의 문화를 전도하는 ‘죽음의 전도사’임을 자청했습니다.

이렇게 안락사 운동도 낙태나 유아 살해처럼 ‘자비로운 살해’, ‘자기 해방’, ‘의사의 도움을 받는 죽음’과 같은 옷으로 가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삶의 질이나 인간의 존엄, 자기조절, 혹은 선택의 자유 같은 것으로 거짓 포장하고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네덜란드의 의학 협회에서는 1986년에, 안락사를 수행할 수 있는 방향 설정을 해 놓았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는 안락사를 요청하는 환자가 자발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고, 둘째는 신중하게 숙고하여 요청해야 하며, 셋째는 지속적인 죽음의 요청(A Durable Death Wish)이 있어야 하고, 넷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되어야 하며, 다섯째는 동료들과 충분한 상의가 있어야 합니다.”

1991년에 네덜란드 정부에서 임명한 한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매년 9,000명의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면서 의사들에게 요청하고 있지만, 2,300명만이 여기에 해당되고, 연간 400명이 의사들의 도움으로 죽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의학 기술을 앞세워 위엄 있고 계시적인 죽음을 이어가는 순수한 죽음을 앗아가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유지하는 것은 인류가 지켜야 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본 명제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안락사가 허락되면 부모에 대한 것이나 공동체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연약자에 대한 처리는 눈에 보듯 뻔합니다. 아마 돈만 아는 자들을 매수한 마귀의 역사가 지배하여 생명을 동물처럼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말씀처럼,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이치이기에 우리 인간이 짧은 지식으로 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생명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값을 주고 산 영혼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그 끝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주고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 생명이 식물인간처럼 보일지라도 그가 천국을 예비하고 있는 주님과의 교제기간으로 알 수 는 없습니까? 죄를 그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 알 수 는 업습니까? 가까운 가족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기간으로 알 수는 없습니까?

셋째로,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1. 우선 바른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에 와서 사람의 생명을 파리 죽이듯 살해하는 예를 여기저기에서 봅니다. 그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최근에 생겨나고 있는 유물론적 사상 때문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사람도 하나의 물건이요 도구입니다. 그러기에 사회적인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서는 죽여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나 과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군사정권들이 그랬었습니다. 또 많은 현대인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서는 사람을 마구 죽입니다.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사람이 육체를 가졌지만 물질만은 아니요,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주인을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을 살해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죄악인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의 인간관을 회복할 때만이 생명을 경시하는 험악한 사회를 변화시켜 살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는 자기 감정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일시적으로 성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제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 하나가 절제(self control)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감정을 절제 못함으로 살인죄를 범하는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은 자신의 영혼을 잘 보존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건강을 해치는 것들을 피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과음, 음란, 흡연, 게으름 등을 말 할 수 있습니다. 또 영혼의 평안을 위하여 주님을 성실히 믿음으로 섬기고, 건강을 위하여 적절한 운동 같은 것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화가 나는 감정을 다스릴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이것이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갈 5:16).

3. 이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여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사회의 삶의 풍요를 위하여 공헌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슬픔에 잠긴 사람을 위로하며,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전도하여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로마서 12:17-21에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엘에이의 코리아타운에 있는 말씀새로운교회 김회창 목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