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교회는 건전한가라는 질문에 No 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이제는 한국교회를 우선 영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선교적으로 재정립해야될 상황을 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해도 누가 반대할 것인가?
특히 한국교회를 판뜨고 있는 이민 교회를 보면 한국판 25시가 되고 있음을 보면서 개탄하게 된다.
심판이 넘실거리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는 이러한 벼랑끝 상황이 오늘의 목회자인 나를, 선교 역사가인 나를 슬프게 한다.
점검하여 수술하면 살고 그렇치않으면 죽을 것임을 천명하게 된다.
첫째로, 한국교회는 영성적으로 건강한가?
물론 한국교회만이 가진 장점들이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남다른 주일예배 성수신앙인다. 천주교나 새들백 윌로우크릭 같이 토요일이나 주일이나 아무날이나 와도 좋소식이 아니다.
또 새벽에 버스를 동원해서까지도 참석하는 새벽기도신앙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새벽에 교회를 향하여 길을 걸어가고 있노라면 조그마한 미니밴을 비롯하여 대형버스가 줄기차게 다니는 현장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 더 성경공부운동과 제자반 운영이다.
무엇이 좋다하면 교역자들이 배워와서 시도해본다.
베델성경공부, 크로스웨이, 최선의 삶, 밴드목회, 레마, 알파, G12. 등 모두 배워와서 분석하고 할 여지없이 다 실행하다는 열정이 있는 한국교회라 할 수 있다.
소위 교회를 프로그램으로 알아 여기에 집착하는 모습들은 오히려 반대로 단점으로 보아도 될 것이이라고 사료된다. 교회는 정통 교회론의 내용을 지켜가며 정통의 길을 가야하는데 프로그램으로 알아 운영하다보면 꼭 보험회사식이 되어버려 영성적인 것이 아닌 심리적인 효과를 이용하여 교인들을 충동하는 양태로 흐르게 되어 기독교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국교회의 건축운동도 그렇다. 영성적으로 꼭 필요한 건축이 아니라 경쟁적인 행위이다.
몇년전에 건축한 건물을 때려부수어 놓고서 몇달을 방치하다가 교인들에게 흉어물스럽다고 느끼게 해놓고서 어떻하냐고 무작위로 돈을 빌릴 수 있는만큼 빌려서 해 대고 본다. 그래 빚을 엄청나게 져놓고서 그것도 능력이여 한다. 더구나 자기는 건축을 지어놓고서 능력있다고 선전해 놓고서 싹 빠져버린다. 큰 교회로 선택되어 가버린다. 이것은 도둑 심보인 것이다. 그 고통을 책임져놓고서 소명을 감당해야지 출세수단으로 건축을 하는 것은 심판받을 짓인 것이다. 이것을 평신도들은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국교회 사역자들은 상당수가 벗어나 있다.
둘째로, 사회적으로 건전한가?
한국교회를 보는 눈이 지금은 개독교라고까지 막말을 해댄다.
그만큼 지탄의 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지역사회를 책임지는 교회인가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하게 된다.
지역복지사업을 보면
정부지원을 얻어서 하는 것이지 교회가 지역사회에 나누어주고 싶어서 하는 경우는 가물에 콩나듯한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직업여성을 위한 보육시설의 경우 정부지원금을 받아 운영한다든가, 등록금을 받아 교사 월급주듯이 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을 보게 된다.
참으로 교회들이 아낌없이 헌신적으로 투자해야 될 분야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헌신하는 여교사들은 너무 수입이 적은 것이 그 특징이다. 그들에게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에게 치중된 호화식 사례들을 정비하여 나눔의 사례를 하여야 할 것이다.
또 지금 노인들을 보살피는 노인학교의 경도 그렇다.
정부 지원금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을 위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한 숫적인 열세를 더하려고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주님의 일을 한다는 이상한 기독교의 행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한국교회는 정말 노령화되어가는 현상에 헌신적으로 저들과 함께하는 성령충만한 봉사를 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더 나아가 지금 사회속에 떠 밀리는 인적 자원이 고통하는 백수의 시대가 되었다.
이들 100만이 넘는 이들을 보살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교회가 두 명 이상씩 그들을 교회의 일에 채용한다면 10만명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 사역자들을 채용하여 훈련시켜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그들이 재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회적인 큰 고통을 한국교회가 나누고 배려하고 동참할 때에 민족속에 기독교로 자리돋움 할 것으로 본다.
그런 배려가 없는 것은 아마도 목회자들의 타락에서 볼 수 있다고 하겠다.
목회자들 속에는 거짓 학력이 난무하다.
논문 없이 학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우후죽순이라고 해도 될 것일 만큼 장사 학위자들이 많이있다.
어떤 이는 타교단에서 전입하여 왔는데 아주 우수한 광주제일고를 졸업하였다고 강단설교에서 자주, 이력서에나 성결인명사전에 기록하여 놓았는데 그게 다 가짜란다. 그것이 밝혀졌는데도 뻐젖이 버티고 있고 교인들을 건축빚이 만키에 내가 떠나면 무너진다고 우롱하고 있다. 심지어 신학교졸업, 안수도, 대학원 나왔다는 것도, 다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이 개탄할 상황 오늘 우리들의 한국교회의 도덕불감증에 걸려버린 성장지상주의 중증 모습이다.
암 수술을 하려다가 도저히 더 할 수 없어 닫아버린 지금의 상황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까?
곧 죽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계시기에 그것이 20년만에 밝혀졌고 하는데?
회개하고 교단 국민 앞에 회개하고 참회의 길을 가야할 것으로 본다.
이게 기독교의 모습이라니
사회적으로
서금 빛의 역할이 아닌 오히려 어둠의 세력화된 양심이 죽은 한국교회!
옛 러시아의 기독교 상황이 그렀었다는 것이다. 그래 공산주의가 들어와도 괜찬아 하고 목사들까지 찬성이요하였다고....그래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되었던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주여 부끄럽습니다. 회개합니다.
세째로, 선교적으로 건전한가?
한국교회는 70년대 말미에 이르러 세계선교운동 특히 성결교회의 경우도 아시아선교운동에 포문을 열었는데 타 교단도 비슷하게 선교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세계가 놀랄만한 한국교회 선교운동이 되고 있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선교 양대 대국이 되었다.
그 엄청난 재원- 선교사들, 선교자금 등이 전 세계로 흘러들어가고, 한국 돈이 달러로 바뀌어져서 각국에 유입되고 있다. 아마 지금 아이엠에프 상황에 제일 힘든 자들이 선교사들일 것이다. 저들의 헌신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찬사만 보낼 형편을 넘고 있는 실정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선교지 건축활동에서 보게 된다.
역시 안이나 밖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무작위로 건축을 하면서 내가 선교사로 있을 동안에 100교회를 건축했다 고아원을 지었어라고 아우성 된다. 스스로 영웅화 시킨다. 2000만원만 있으면 어머니의 이름으로 한 교회를 지을 수 있다고 하여 고인의 마음에 불을 질러 유산 받은 것을 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종교개혁시대에 사제들이 져질렀던 인덜전스-곧 면죄부와 무엇이 다른가?
무엇을 빙자한 선교운동 헌금운동들은 다 비기독교적인 작태인 것을 파악하였으면 한다.
주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헌금이 된다면 모를까
아주 깊이 자성해야 할 기독교가 되었다.
지금 선교자금이 무작위로 흘로 해외로 들어가고 있다.
우리 교단만 하더라도 100억이 넘는 선교금으로 해외로 나간다. 교단의 예산과 비슷하다.
우리의 이웃의 고통은 아랑곧 하지않고, 이웃의 형제를 보살피지는않고, 자기 형제들의 고통은 보살피지않고, 해외로 해외로 치닫고 있다.
이것 역시 독일의 루터가 사제시절에 나타난 현상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그 시절에 독일교회의 헌금이 대다수가 이탈리아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웃의 고통에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가라고 철학적으로 비평하고는 외면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였던 것이다.
교회들이 선교를 하되 이웃을 돌아보는 선교를 해야한다.
어떤 목회 후임자는 가난한 나라의 선교사로 활동을 10년이나 하였는데 교회로 부임 후 홈리스 사역에 철퇴를 가하였던 것이다. 그들을 외면하고 돈 되는 사람들을 상대로만 사역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건축을 빚으로 추진하여 기하급수적인 빚더미에 이르게 되었다. 이게 선교적인가?
이것을 누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것인가?
이것이 부흥인가?
기독교를 아주 천한 짓거리로 전락시킨 교주적인 사교 집단화로 이끌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인들의 것을 울겨내서 짜내서 그런 짓을 하면서 부흥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개탄그러운 현상이 내 주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어찌 이것이 선교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교회들이 한 두 교회들이 아니다.
미국은 지금 금융사태로 집값이 3-40%에서 심지어는 절반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민 오신분들이 집값이 올라가니까 지난 몇년사이에 30년간의 빚으로 사들였다. 그러나 지금 집값이 폭락하고 수입은 줄고 울쌍이다. 어찌해야 좋을지 아누성돼면서 이곳 샬롬센타나 케이씨씨디를 찾아 도움을 구해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을 잘 돌보는 보듬는 선교가 행해져야 할 때이다.
해외선교는 정말 잘 평가하여 주님의 지상 대 명령이 준행되는 차원에서 해야지 경쟁적인 차원에서 한다면 건축 짓거리로 전락 되버려 지역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될 것으로 사료되어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소위 보이는 교회 확장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 사역으로 효부를 걸어야 할 때인 것이다.
만에 하나
선교사 후에 부자가 되신 분들은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심판이 바로 그 돈, 그 부동산으로 임하며
그 것을 사용하는 자녀에게 임할 것으로 보여진다.
확실한 것이다.
남은 헌신하게 하면서 자신은 축적한다면 소경 사역자인것이다. 어디로 가겠는가? 웅덩이일 뿐이다.
회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한국 기독교가 건전한 기독교가 될 수는 없을까?
예수 그리스도 없는 행각을 멈추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행동에 이용하던 짓거리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선교 사랑의 손길로 주님을 대신하는 일을 행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고통의 우리 세대의 우수한 자녀들에게 한국교회는 장학금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자기교회자녀들 밖의 자녀들에게 그런 인물양성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
직업을 갖지못한 자들에게 교회가 직업을 창출해 주어야 할것이다. 둘씩 교회를 야간에 근무서게한다든지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기위한 리서치하게 한다든지 저들이 사회적인 직업을 찾기까지 교회는 저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야할 것이다.
목회자 사례비 나눔이 대사회를 향하여 할 것이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왠 사례비가 그렇게 많습니까? 자녀들을 결혼시켰는데.....
그리스도의 성령이 나의 사역에서 탄식하지 않도록 윤리적으로 거짓없이 사역하여야 하지않겠는가?
오직 복음만이 전해지도록 나를 감추고 주 예수님을 들어내는 복음선교가 아쉬운 시대인 것이다.
주여 부끄럽습니다.
한국 국민이여
부끄럽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은총만으로
오직 말씀만으로"
-2008년 종교개혁기념주일에
-영성의 시냇가에서 김회창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