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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광야 인생을....

ULI 2010. 3. 4. 11:18

사순절 묵상

 

광야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시작에 성령이 인도해서 광야로 나가셔서 40일간을 지내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광야로 나가셨을까?

 

우선 광야는 만남의 장소이었습니다.

이 광야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곧 은총의 장소라는 감추어진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만난 거룩한 장소이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 가시나무떨기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40년 만에 만나시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광야의 끝인 호렙산 자락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도

빈들에서 곧 광야에서 훈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는 상황 곧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 주님을 만나서 외롭게 외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기독교에서는 광야를 은혜로운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관할하는 영역인 것입니다.

 

1)이 광야는 심지어 사라의 집에서 쫓겨 난 여종인 하갈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여주인을 ‘애기 못나고 나는 애기를 가졌다’고 거들먹거리다가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내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6:7에 보면, 분명하게 광야의 샘 곁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나는 나의 여 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중입니다.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라.”

 

이에 그 샘이 ‘브엘라해로이’라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생존의 소리를 듣게 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심하게 살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 광야에서 듣게 되어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기억하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되 내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어찌 하갈뿐이겠습니까?

 

2)이 광야에서 도망치듯 이민생활로 치닫던 야곱이 광야 한 복판인 ‘루스’라고 하는 사막에 지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두려워 벌벌 떨며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야곱은 선조들이 믿는 하나님은 나에게도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실존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8:15 이하에 보면,

그것이 생생합니다.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할 거야!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할거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는 네 편이다. 다시 돌아오게 할거야! 임마누엘!” 깨어 일어난 그는 “광야 중 호랑이와 사자들에게 물려 그 밥이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다니” 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 광야 벧엘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의 영성의 회복을 맛본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씁슬한 인생길

거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찬스는 아닌가요.

축복의 거룩한 영역은 아닌가요?

오히려 십자가 길의 쓸쓸함에 주님은 동행하며 "네가 내 참 제자로구나!" 하실 것입니다.

사순절에 광야 인생인 나를 탓하고 주눅들어 사시지 말고

오히려

성 삼위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자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여.....